[사람 사람] "첫째도 신용 둘째도 신용 기업식으로 정치했으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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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경기도 광주 중부골프장. 채 동이 트기 전 두 여인이 골프장을 돌고 있었다. 두 사람은 골프를 친다기보다는 걷는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천천히 걸으며 꽁초도 줍고 잡초도 뽑고 있었다. 나이가 지긋하게 든 사람은 이 골프장의 오너인 장영신(張英信.67) 애경회장이고, 젊은 여인은 캐디였다.

"공장이나 회사를 관리하고 청소하던 버릇이 들어 골프장에서도 어쩔 수가 없어요. 혈압도 약간 높고 당뇨와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 의사 선생님이 많이 걸으래요. 그래서 회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새벽에 골프장을 찾지요."

張회장은 2001년 7월 대법원의 선거무효 판결로 의원직을 상실했다. 이후 정치판을 떠난 張회장은 그룹 경영에는 간섭하지 않고, 불우이웃돕기와 사회봉사 활동을 벌이고 있다. 국내 여성 최고경영자(CEO)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가장 닮고 싶은 여성 CEO'로 수년째 뽑힌 張회장을 지난 15일 서울 구로구 애경산업 사무실에서 만났다.

"살아온 길이 시원치 않았는데…. 책임감을 느껴요. 30여년간 한우물만 팠으니까 그걸 인정해줬나 봐요."

애경그룹의 첫 출발은 張회장의 남편(故 채몽인씨)이 1951년에 설립한 무역업체인 대륭산업이지만, 궤도에 오른 것은 張회장이 경영에 참여한 72년 이후다. 당시 2개에 불과했던 계열사가 지금은 15개로 늘어났다.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張회장은 남편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애경을 물려받았다. 기업내용에 어두운 상태에서 경영에 나선 그는 부지런함과 끈기로 경영을 공부했다. 오전 7시 30분이면 어김없이 출근했고, 모르는 내용이 있으면 담당 과장까지 찾아다니며 배웠다.

그의 경영철학은 '인재 중시'다. "우수한 인재 밖에는 재산이 없어요. 오일 쇼크와 외환위기 때 어려움이 닥쳤는데도 유능한 인재가 있어 극복했습니다. 대부분의 전문경영인들이 우리 그룹에서 30년 이상 일하신 분들입니다. 저보다 훨씬 회사를 잘 경영하고 계십니다."

그는 요즘 결산 때만 경영성과를 보고받는다고 했다. 張회장은 "진작 일선에서 물러났어야 했는데 너무 오래 붙들고 있었다"며 환하게 웃었다. "애경은 그야말로 '국민 기업'입니다. 샴푸.비누.세제 등 소비자들이 직접 사용하는 제품을 많이 만들지요. 국민들이 매일 쓰는 제품을 우리 손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연구개발(R&D)에 투자를 많이 해요." 그는 70년대에는 애경과 비슷한 소비재를 만드는 기업이 10여개에 달했지만 지금은 두개 정도만 남아 있다고 덧붙였다.

여성의 몸으로 어려움이 없었을 리 없을 것이다. 그는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했다. 그 때마다 한국 여성기업인의 명예를 걸고 이를 악물었다고 했다.

"지금은 여성 기업인이 많지만 제가 사업을 본격적으로 할 때만 해도 별로 없었어요. 의논할 상대가 없어 혼자 결정을 내리고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했죠."

張회장은 역대 정권의 여성 정치인 영입 후보에 올랐다. 그 때마다 고사했다. 그러나 99년에는 국민회의 창당발기인이 됐다. 그러다 국회의원이 됐고 중도에 의원직을 상실했다. "구로구는 저희들의 고향입니다. 54년 지금 애경백화점 자리에 비누공장을 세웠죠. 구로구에는 좋은 호텔도, 제대로 된 백화점도 없어요. 구로구를 도울 일을 찾다 정치를 하게 됐죠. 아이들도 많이 컸고 전문경영인들이 기업을 잘 경영해 이제 다른 일을 해도 되겠다 싶었어요."

2년간 정치를 한 소감을 물었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과장도 잘하고 허풍도 잘 떠는 것 같아요. 기업하는 식으로 정치하면 성공할텐데 말입니다. 기업은 신용이 제일 중요하잖아요. 신용이 없으면 은행에서 1원도 안꿔줘요. 정치인들도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지고, 유권자들에게 신용을 얻어야 해요."

다시 영입 제의가 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물음에 張회장은 손사래를 쳤다. "이제 정치에는 흥미가 없다"고 했다. "독거노인도 만나고, 결식아동과 장애어린이 돕기를 하고 있어요. 소년소녀 가장들에게 장학금도 주죠. 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 이렇게 많은데 왜 정치판에 다시 나서요?"

글=김동섭,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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