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혜의혹” 여야 한목소리/정치권에 「이동통신」소용돌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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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YS 반발 수위에 관심집중 민자/“6공비리” 쟁점 극대화 전략 야권
정치권이 들끓고 있다. 정권말기에 대통령이 사돈의 기업에 재계판도를 바꿀만한 이권을 준데 대해 야당은 물론 여당까지 특혜의혹을 거론하고 나오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통령선거가 코앞에 닥쳐있다. 여야는 모두 이 문제를 선거와 직결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여는 악재라고 비명을 지르고 있고 야는 호재라며 쾌재를 부른다.
여야는 대체로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는 공동인식하에 백지화쪽으로 쟁점을 몰아가고 있고 청와대는 기정사실화에 골몰하고 있다.
○민자당
○…이동통신사업자 선정을 둘러싼 정가의 최대관심사는 과연 야당측 주장대로 김영삼민자당대표의 반발이 사후면책용이냐,아니면 노태우대통령과의 일전불사를 각오한 것이냐다.
민자당 일각에서조차 계파에 따라선 김 대표가 대선에 미칠 악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반발의 수위를 조절하고 있지 않느냐는 시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대표 측근들과 이동통신 문제를 놓고 그와 대화를 나눠본 사람들은 『김 대표가 그렇게 화내는 것은 처음 보았으며 마주 앉아 있기조차 힘들었다』고 면피용이라는 설을 일축한다. 김 대표를 노 대통령식 정치행태로 보지 말라는 얘기이며 적어도 국민적 관심사에 더블 플레이를 할 정도로 김 대표가 부도덕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들은 김 대표가 그동안 청와대 주례회동을 포함해 모두 네차례 대통령에게 업자선정연기를 건의했고 노 대통령의 재고언질을 받아 꽤 낙관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자신의 건의로 연기결정이 나면 권력의 중심축을 자연스럽게 옮겨올 수 있고 다양한 색깔의 범여권을 장악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것이라는 점에서 연기건의에 전력투구했다는 것이다.
그랬음에도 노 대통령이 김 대표의 건의를 끝내 묵살하고 퇴임후를 대비한 「실리」를 챙겼기 때문에 이제는 노 대통령과의 관계를 달리 생각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20일 청와대회동후 김 대표는 이례적으로 비서진을 통해 ▲사업자산정에 의혹이 제기되고 있으며 ▲대통령선거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고 ▲당과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선경을 선정,발표한데 유감을 표시한 사실을 발표했다.
이를 주목하고 있는 사람들은 앞으로 노 대통령과 김 대표간의 밀월시대는 끝나고 별거의 냉각기가 시작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제 남은 것은 김 대표가 대선의 대형악재가 될 것이 틀림없는 이 문제를 언제 어떤 형태로 반대를 제기하느냐의 문제다.
이에 대해 김 대표 참모진에서도 ▲백지화내지 무효화선언 등 정면대결 ▲「깨끗한 대통령·도덕성있는 정부」 강조 등 포괄적인 반대의사 표명 ▲당정회의 등을 통해 당차원의 반대입장 개진 등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김 대표가 노 대통령과 정면대결하면 노 대통령도 치명상을 입겠지만 자신에게도 부담이 너무 크다는 현실적 제약요인에도 불구하고 매우 단호한 입장을 취할 것으로 보는 경향이 당내에선 우세하다.
이는 자칫 여권내 분열을 촉진하며 대선의 자금동원 등에 대한 노 대통령의 협조를 기대할 수 없는 손실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 그런 국면은 바로 야당이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때문에 여론정치에 이골이 난 김 대표가 국민정서에 맞는 어떤 수준의 반전을 시도할 것인지 주목된다.
김 대표는 21일 강릉지구당 개편대회를 계기로 그 부당성을 제기한데 이어 28일 당총재 인수를 계기로 강도높은 선경선정 백지화의 대선공약 제시 등 대응책을 제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김 대표측은 이와 함께 노 대통령과의 상하관계를 청산하고 독자노선의 시기를 앞당길 계획이다.
이동통신이란 대선가도의 거대한 바윗돌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빨리 홀로서기의 모습을 보일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야권
○…야권은 예상대로 선경이 선정되자 6공 최대비리로 몰아 정치쟁점으로 극대화해 대통령선거전략으로 활용한다는 방침을 구체화하고 있다.
김대중민주당대표는 『재계판도를 좌우할 사업을 임기말에 대통령 친인척에게 특혜로 주는 것은 국민우롱』이라고 단정했고 정주영국민당대표도 『건국이래 최대이권사업을 정실에 의해 결정한 것은 유감』이라고 성토했다.
민주당은 선경선정의혹을 파헤치기 위해 비상대책위를 만들었고,국민당도 신문에 비난광고를 내는 등 두 야당은 어떤 때보다 신속히 대응하고 있다.
김대중대표는 선경선정을 백지화하기 위해 김영삼민자대표,정 대표간의 3당대표회담을 20일 오후 제의했으며,필리핀을 방문중인 정 대표는 귀국(21일 오후) 즉시 응하겠다고 받아주었다.
다른 어떤 사안보다 탄탄한 야권공조가 형성되는 것은 이 문제를 보는 시각과 정치적 이해가 일치하기 때문이다.
김대중대표는 이동통신문제를 대선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따지면서 가을 정국관리의 바탕으로 삼을 전략을 세우고 있다.
그는 김영삼대표에게 3자회담 수용을 촉구하면서 응하지 않을 경우 임시국회 소집을 통한 정국조사권 발동을 계획하고 있다.
국정조사권 발동요구는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의 제출로 가능해 민주·국민당이 함께 내면 되고 그럴 경우 자연스럽게 임시국회가 소집된다. 국감법에는 국정조사요구서를 제출하면 임시국회를 소집한 것과 같은 효력을 지닌다고 규정돼 있다.
다음 단계로 야당은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청문회 성격의 조사를 주장해 김영삼대표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 작정이다.
김영삼대표는 선정반대의 동조입장이어서 국조권발동을 거부하기도 매우 어렵고 그렇다고 노 대통령에게 직격탄이 쏟아질 국조권 수용도 지난하다는게 민주당측 계산이다.
야권은 이같은 강공으로 노­김 갈등을 심화시키거나 최소한 서먹한 관계로 만들면 김영삼대표에게 현직대통령의 전폭지원을 못받게 하는 부수효과를 올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김대중대표는 여기에 자치단체장 선거문제를 집요하게 추궁,김영삼대표를 압박해 들어간다는 전략이다.
○…야당은 이 사안을 사돈특혜로 볼 수 밖에 없는 이유로 사업자선정과정이 짜맞추기로 진행됐음을 오래전부터 지적해왔다.
재계 랭킹5위인 선경을 찍어주기 위해 통신기기 제조업체의 참여배제명분을 내세워 앞선 4개그룹을 주저앉힌 뒤 자기자본지도비율 조정 등 선경에 유리한 심사조건을 여러차례 달아 왔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이미 7월 정권말기 특혜조사위 활동결과 『선경을 사전결정해놓고 합리적 사업자 선정으로 가장하기 위해 복잡한 심사절차가 동원되고 있다』고 단정해 놓았다.
국민당도 현대정보망을 통해 대비해왔다.
민주당 조세형비상대책위원장은 『임기말에 서둘러 정한 것은 노 대통령의 퇴임후 보장책과 대통령선거자금 확보와 관련돼 있다』고 단언하고 있다.
특히 야당은 이 문제를 둘러싼 노 대통령과 김영삼대표간의 갈등설이 어느 정도인지,아니면 정치적 제스처인지를 주목하고 있다.
대체로 『20일 청와대회동 결과로 보아 김영삼대표가 청와대측과 야합해 정치적 체면을 세우고 내부적으론 정치자금을 받는 묵계가 있을 것』(김상현민주당최고위원)으로 보고 있다.
유인학정책위부의장(민주)은 『김영삼대표는 자신의 대통령후보 이미지관리를 위해 적정 수준에서 비판할 것임을 노 대통령에게 양해를 구했고,노 대통령은 조기선정하는 대신 김영삼대표를 위해 선거자금을 만들어 주기로 묵계했을 것』이란 의혹을 제기했다.
말하자면 김영삼대표의 비판설은 대통령선거를 겨냥한 차별화전략의 일환에 불과하고 실제론 청와대와 입을 맞췄다는 주장이다.
아예 김대중대표는 『현정권이 노­김영삼정권인데 새삼스럽게 무슨 차별화정책이냐』고 꼬집었다.<박보균·김두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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