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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온 만화가 뫼비우스 "한국 만화여, 어떤 조언도 듣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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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1979년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에일리언'세트.의상 디자인, 1997년 뤽 베송 감독의 영화 '제5원소'미술 디렉터, 2003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나무'의 삽화.

이 모든 작업은 프랑스의 한 만화가가 담당한 것이다. 세계적인 SF(공상과학) 예술 장르의 거장으로 추앙받는 만화가 뫼비우스(본명 장 지로.69.사진)가 그 주인공이다. 23일 그가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27일까지 열리는 제11회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발(SICAF)에 마련된 뫼비우스 특별전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행사가 열리는 서울 대치동 서울무역전시장(SETEC)에서 만난 그는 당일 아침 도착한 터라 시차 적응에 애를 먹는 모습이었다. 그러면서도 "오히려 이처럼 몽환적인 기분이 들 때 작품이 잘 그려졌으니 인터뷰도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농담을 건넸다.

60년대 초 프랑스 인기 만화잡지 '필로트'에 '블루베리'라는 작품을 연재하면서 본격적인 만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는 번득이는 아이디어로 SF만화계에 화제를 일으켰다. 그러다 영화 제작에도 참여, 가상의 캐릭터.세트 디자인 등을 통해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했다. 이뿐 아니라 일러스트레이션이나 광고 등에도 진출, 만화가로서의 참여 영역을 계속 넓혀 왔다.

그는 자신의 상상력의 근원을 "누구보다 끈기 있는 관찰력"이라고 했다. SF 소재라 해도 인간의 사고 범위를 넘어설 수 없으며 다만 주변의 사물, 벌어지는 사건을 독특한 시각으로 예리하게 관찰하는 게 새로운 창조의 원동력이 된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렇게 얻은 상상력을 지키는 것 역시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점차 만화.애니메이션 분야가 하나의 산업체처럼 구조화되면서 작가의 예술적 개성이 매몰되는 일이 많다고 했다. 그는 "세계적으로 산업화와 예술성 두 마리 토끼를 잘 잡고 있는 모범적인 사례가 바로 일본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한국 만화 발전을 위한 조언을 구하자 그는 대뜸 "한국 만화여, 어떤 조언도 듣지 말라"고 답했다. 누군가를 따라 하는 게 당장 발전에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장기적으로 한국 만화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데 발목을 잡을 수 있을 것이란 이야기였다.

김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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