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억 들인 모델하우스 "투기 부르니 문 닫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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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24일 인천시 송도동에 자리한 포스코 더샵 센트럴파크원 주상복합아파트의 모델하우스(견본주택). 정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개장일이 다음달 7일이지만 공사는 중단됐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의 통보가 온 것은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던 지난달. "송도 더 프라우 오피스텔처럼 청약 과열이 우려되니 청약 때 모델하우스를 열지 말라"는 주문이었다.

업계 관계자는 "분양률을 높이려고 만든 모델하우스를 닫게 하는 건 공권력을 동원한 '업무방해'"라며 "미분양이 나면 정부가 책임질 것도 아니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아파트 모델하우스가 사라지고 있다. 포스코건설처럼 수십억원이 넘는 공사비를 들여 모델하우스를 다 짓고도 문을 못 여는 곳이 있는가 하면 아예 모델하우스 건립을 포기하는 업체도 나오고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과잉 규제 때문이다. 지차체들은 "모델하우스에 인파가 몰려들면 투기를 부추길 우려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속내는 다르다. '더 프라우' 사태가 재연될 것을 우려한 몸사리기다. 더 프라우 오피스텔은 3월 4855대 1로 사상 최대 청약률을 기록하는 청약 광풍을 불러 사회 문제로 비화했다.

◆ 모델하우스가 사라진다=다음달 분양하는 화성 동탄의 메타폴리스, 용인 상현의 힐스테이트에 청약자들은 모델하우스를 구경조차 못하고 청약신청서를 쓰게 됐다. 송도 더샵 센트럴파크원과 마찬가지로 분양 승인권자인 지자체가 당첨자 발표 전에는 모델하우스 문을 열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업체 관계자는 "지자체는 '권유'라고 하지만 분양 승인과 연계돼 있기 때문에 사실상 강제 조치"라며 "지자체 말을 듣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메타폴리스의 모델하우스는 100억원 가까운 공사비가 투입됐지만 헛돈을 쓴 게 됐다. 게다가 추가 비용을 들여 사이버 모델하우스를 만들어야 했다. ㈜메타폴리스 관계자는 "멀쩡한 집은 버려두고 동영상으로 꾸민 사이버 모델하우스를 만드는 촌극을 벌이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러다 보니 앞으로는 실물 모델하우스를 만들지 않겠다는 업체도 등장하고 있다. S건설 관계자는 "정부가 모델하우스에 곱잖은 시선을 보내고 있는 데다 9월부터 분양가 상한제가 시행되면 이윤이 적어질 게 뻔해 실물 모델하우스를 만들지 않을 계획"이라며 "대신 3차원 영상 화면으로 모델하우스를 대체할 것"이라고 말했다.

◆ 과잉 규제로 소비자만 피해=사이버 모델하우스가 처음 등장한 것은 지난해 3월 판교 분양에서였다. 당시에도 소비자 권리 침해라는 반론이 거셌지만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판교 분양 이후 사이버 모델하우스가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하는 정부와 달리 소비자의 불만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송도 아파트 청약을 준비 중인 김모(41.인천시 남구 주안동)씨는 "1만~2만원짜리 셔츠를 살 때도 입어보고, 자동차도 시승해 보고 사는데 수억원짜리 집을 사면서 모델하우스도 보지 않고 고르라고 하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용인 상현의 힐스테이트 분양을 기다려 왔다는 강모(38)씨는 "무사안일이 습관이 된 공무원들이 자기 편하겠다고 집 고를 자유마저 뺏고 있다"며 "사라져야 할 것은 (모델하우스가 아니라) 엉뚱한 규제나 만드는 공무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D건설 관계자는 "투기를 부추기는 것은 모델하우스 줄서기가 아니라 정부의 잘못된 주택정책"이라고 말했다.

김준현.함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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