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웃음의 메달을 보고 싶다(유승삼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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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황영조선수는 「골인후 왜 쓰러졌느냐」는 질문에 『어머니 생각이 나면서 긴장이 풀려 갑자기 다리에 쥐가 났다』고 대답해 외국기자들의 폭소를 자아냈다.
인간의 한계에 도전해 세계를 제패한 무쇠의 건각이 골인순간에 생각한 것이 「어머니」였다는 것은 정말 뜻밖이었을 것이다. 그들로서는 폭소를 터뜨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왜 그가 어머니 생각을 떠올렸는가를­.
○「눈물진 삶」의 상징물
어머니­. 그렇다. 황 선수가 말한 어머니라는 세 음절의 단어는 우리들에게 있어선 단순한 모성이지만은 않다. 그것은 우리들에게 있어선 고난의 역사와 고통스런 현실,그리고 눈물진 삶의 상징어다. 그 심중한 의미를 외국기자들이 어찌 알겠는가.
외국인들이 이해못했던 것은 또 있다. 영광의 마당에서 기뻐해야 할 순간에 예외없이 터져나온 통곡이다. 눈물을 흘린 것은 여자 선수들만이 아니었다. 경기에선 날쌘 표범같기만 했던 안한봉마저 시상대위에선 눈물을 이리 훔치고 저리 훔쳤다.
흔히 가장 격정적인 종족은 라틴계라고 한다. 서양인에 비해선 동양인들이 훨씬 감정적이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감격해 울만한 스페인 선수들도 그렇게 울지는 않았다. 같은 동양인이지만 중국선수도,일본 선수도 울지는 않았다. 심지어 한핏줄인데도 북한 선수들마저도 의외로 담담한 편이었다.
그런데 우리 선수들은 왜 그토록 울어야 했을까.
양궁의 조윤정은 서울의 달동네에 있는 10평짜리 7백만원의 전세집에 살고 있는 파출부 홀어머니의 딸이었다. 유도의 김미정은 메달도 메달이지만 부모의 전세방을 넓혀줄 수 있는 연금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핸드볼의 남은영은 끼니와 학비를 해결하기 위해 간호사의 꿈을 버리고 운동을 택한 소녀가장이었다. 일일이 예를 더 들 필요가 있을까.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바람이었다」는 어느 시인의 표현 그대로 메달을 키운 것은 8할이 가난이었다.
○작은 성취 도취 말아야
그래서 우리들은 세계 7위의 성과에 즐거워 하다가도 한편으론 가슴이 아려옴을 느낀다. 어디 메달리스트들의 사연뿐인가. 우리는 29개의 빛나는 메달 뒤켠에는 여전히 한을 품은채,오히려 더 큰 절망속에 남몰래 통곡하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소녀가장 남은영은 「이젠 울지 않아요」라고 말했다지만 수술비가 없어 장님이 된 동생의 눈을 뜨게 해주려고 3년을 안간힘썼던 레슬링의 김선학은 4위의 아픔을 안고 울고 있다. 김선학뿐이겠는가. 올림픽 출전의 기회조차 얻지 못했던 한의 젊은이들은 또 얼마나 많겠는가. 진정으로 우리들이 격려의 박수를 보내야 할 쪽은 메달리스트들이 아니라 이쪽인지도 모른다.
이번 올림픽을 통해 우리들은 메달이 엄청난 국력을 쏟아 만들어지는 것임을 재확인했다. 스페인이 88때의 금메달 한개에서 13개로 뛰어 오를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우리도 금메달 한개에 8억원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그것 뿐만은 아닐 것이다. 성취하겠다는 선수 개개인의 의지가 뒤따르지 않고서는 아무리 국력을 쏟아도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다만 그 의지의 바탕이 된 것이 우리에겐 「가난」이었다는게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어찌됐든 우리들에게 그러한 강력한 의지가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다는건 스스로 생각해도 고맙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구미나 중남미를 보라.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을 그저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가난을 세습하며 무기력하게 살아가고 있을 뿐이 아닌가. 이른바 「가난의 문화」다. 그러나 우리들에게는 적어도 그것은 없다.
이런 우리들에게 태어나면서 얻은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도약대나 탈출구를 마련해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개개인의 잘못은 아니다. 그것은 사회의 책임이다.
○순수한 영광 누리자
사회는 의지가 있는 모든 불우한 사람들에게 탈출구와 도약대를 마련해주어야 한다. 또 왜 가난의 탈출구가 꼭 스포츠여만 하는가. 왜 그들은 정경화는 될 수 없는 것인가.
창밖에선 여전히 많은 이웃이 울고 있는데 29개의 「예외」와 「기적」에 마냥 즐거워하기만 하라는 것은 일종의 「최면」일는지도 모른다.
최근 우리 사회에는 이상주의가 실종돼버린 느낌이다. 그동안의 작은 성취에 너무도 도취해 있는 느낌이다.
지나치게 이기주의에 매몰돼 이웃의 아픔엔 둔감한 것 같다. 최소한 다음 세대에게서는 눈물의 금메달이 나오지 않게 하려면 우리는 「이상」을 다시 살아 숨쉬게 해 불우한 이웃에게도 무한한 꿈과 가능성을 열어주어야 한다.
더 이상 선수들의 스토리를 읽으며 울고 싶지 않다. 경기장이 통곡의 마당이 되는 것도 그만 보고 싶다. 그저 스포츠의 영광은 스포츠의 영광일뿐인 그런 순수한 기쁨을 맛보고 싶다. 자라나는 어린이와 젊은이들에게는 눈물보다는 활기찬 몸짓으로 환하게 웃을 수 있는 그런 여유를 되찾아 주고 싶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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