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고사태는 「티토 콤플렉스」탓”/독일학자 심리학적 분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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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민족주의자 탄압으로 경계심리 확산/공격·이기주의적인 국민성으로 발전
내전 당사자간 수십차례의 휴전합의가 채 몇시간도 지나지 않아 깨지기를 거듭하면서 지난 1년여동안 수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유고사태의 원인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한 연구결과가 발표돼 관심을 끌고 있다.
유엔의 용역으로 지난 수개월간 유고 현지에서 이를 연구조사한 독일 하이델베르크 소재 「예방의학·정치·경제·보건심리학연구소」의 로날트 그로사르트 마티체크교수는 현유고사태의 원인을 「티토콤플렉스」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다음은 마티체크교수가 독일의 시사주간 슈테른지 최근호에 기고한 내용을 요약한 것.
현 유고사태를 진단하기 위해 수백년간의 세르비아­크로아티아 분쟁사를 들춰내는 일은 무의미하다. 최근 몇달동안 세르비아인과 크로아티아인 각각 3백70명을 유고 현지에서 면담한 결과 광란에 가까운 현 유고사태의 원인은 바로 티토콤플렉스에서 기인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티토콤플렉스의 기원은 나치가 유고에 진주한 1941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치의 꼭두각시였던 크로아티아의 우스타샤정권은 망명한 국왕 페테르2세에게 충성하는 세르비아인들과 공동으로 티토의 빨찌산부대에 맞서 싸웠다. 그러나 라이벌관계인 두민족간 갈등은 여전했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세르비아인이 크로아티아인에게 학살됐다.
나치로부터 유고를 해방시킨 티토는 이러한 민족갈등이 가장 큰 문제로 보고 민족주의자들을 철저하게 탄압했다. 이 때문에 티토에 대한 국민들의 감정이 「애증」으로 나타났다. 즉 티토가 조국을 해방,내적인 평화를 이룩했고 국제적 지위를 향상시킨 점은 그를 사랑하게 한 요인이었지만 그가 카리스마적 전제정군을 세운 것은 그를 싫어하게한 요인이었다.
티토의 죽음과 함께 사실상 유고의 붕괴는 시작됐다.
세르비아인들은 티토가 자신들을 절멸시키려한 크로아티아의 첩자라고 주장했고 크로아티아인들은 그가 실은 크로아티아인이 아니며 세르비아 공산주의자라고 맞섰다. 아이로니컬하게도 티토주의자였던 세르비아의 슬로보단 밀로세비치나 크로아티아의 프란요 투즈만이 자신들의 지위확보를 위해 민족주의적 슬로건을 내걸고 선거에서 승리,두 공화국의 대통령이 됨으로써 유고는 이념적으로 2차대전때로 되돌아간 셈이 됐다.
세르비아인들은 크로아티아가 다시 독일과 손잡고 자신들을 멸종시키려 한다고 의심하게 됐고,크로아티아인들은 세르비아 공산주의자들의 패권에 두려움을 느끼게 됐다.
티토에 의해 형성된 이러한 티토콤플렉스는 그러나 보다 심각한 차원의 근본적인 문제에서 출발하고 있다. 바로 국민 개개인의 심리상태다.
민족과는 별개로 유고의 가족구조상 남성들은 어머니의 편애속에 성장한다. 이 결과 유고 남성들은 사소한 일에도 공격심리를 보이는 등 이기적이고 자기도취적인 이상성벽의 소유자로 성장하게 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택하는 상대는 아버지다. 그러나 아버지 역시 같은 성장배경으로 같은 성격이기 때문에 남자아이들은 아버지보다 더 공격적이고 애국적인 사람이 되는 것으로 보상받으려 하게 된다.
티토사후 민족주의 재현은 유고인의 「어머니 고정심리」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으로 다른 어머니,즉 다른 민족은 더럽고 상종못할 상대라고 이들은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세르비아측에 제재를 가하고 있는 서방세계는 이 사실을 알아야 한다. 유고인 개개인이 이러한 국민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세르비아 과격주의자들 사이엔 『우리의 적을 없애기 위해 최후의 1인까지 싸우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고 이 때문에 유혈사태는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유고사태 해결을 위해서는 그들의 불안을 이해하고 진정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베를린=유재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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