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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매니저|「히트송」뒤에 숨은 스타 메이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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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한 식당에서 노래부르며 아르바이트하던 예쁘장한 청년 K군은 연예계에 발이 넓은 손님 Y씨의 눈에 들어 가수가 될 의향이 있는지 제의받는다.
돈을 벌고도 싶고 무엇보다 유명 인사가 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마음이 끌리는것이므로 K군은 가수가 된댜는 꿈에 부푼다.
K군이 엄청난 수입을 올리는 스타가 되도록 하기위해 「매니저」Y씨는 먼저 목소리·외모·말솜씨·출신배경 등에서 매력이 될만한 요소를 찾는다.
매니저는 이어 최근의 유행 음악 추세가 빠른 템포의 댄스곡이며 K군이 훤칠한키에 시원스런 용모를 가지고 있으므로 이에 어울리는 노래를 깔끔하게 만드는 작곡자 P씨를 만나 적당한 금전적 계약을 한다.

<우상만들기 조련>
스타는 평범한 인간을 훨씬 뛰어넘는 매력적인 우상이기에 Y씨는 K군에게 춤과 노래는 물론 무대매너·말버릇까지 맹연습을 시켜 완전히 탈바꿈하게 한다.
편곡자·연주자·녹음실 등을 연결해 6개월이상 걸려 음반이 완성된다.
K군을 홍보하기 위해 음반을 방송국에 돌리고 신인댄스가수가 영향력을 발휘하는 프로그램의 PD에게 접근, 출연하게 되도록 로비한다.
아무도 예기치 못했던 K군이 눈깜짝할 사이에 여고생들의 우상이 되자 곳곳에서 출연제의가 오고 밤무대·CF출연등으로 엄청난 수입이 들어온다.
스케줄이 겹치면 펑크내서 PD들의 외면을 받지 않도록 세심한 조정을 해야한다.
한달 수입 수천만원중 K군에게 스타 기분을 내도록 고급 승용차를 구입해주고, 의상·메이크업 등의 소모비용을 지불하고 운전사·로드매니저·사무실 직원등에게 급여를 주고 물론 자신도 챙긴다.
『무대에서 고생하고 대중의 열광을 자아내는 것은 나인데 수입이 이것밖에 되지 않느냐』고 불평하는 K군의 불만을 막기위해 사정을 설명하거나 의리를 내세우며 윽박지르기도 한다.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대중의 우상이 되는 스타의 뒤에는 보이지 않는 주인공인 매니저가 존재하고 있다.
몇몇 거물급 영화배우나 탤런트를 제외하면 매니저하면 모두가 가수 매니저들이다.
여의도 방송가에는 깔끔한옷을 걸치고 한손엔 핸드폰, 허리춤엔 삐삐를 차고 수시로 여기저기 전화를 하다가 PD가 나타나면 우르르 몰려가 90도로 꾸벅 절을 하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이른바 매니저들이 수선거리고 있다. 이들은 그러나 대개 기획실장·부장 등으로 불리고 예전에는 속칭 「가방모찌」로 알려진 「로드매니저」다.
여의도에는 「XX기획」「XX프러덕션」이라는 사무실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매니저가 약 1백5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은 사장님으로 불리고 가수의 음반 기획에서 방송·유흥업소·CF출연에 이르기까지 전반을 총괄하는 진정한 의미의 매니저다.
가수들의 생사 여탈권은 가요PD가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매니저들은 PD에게 그들이 보살피는 가수의 노래가 깊게 인상박히도록 갖은 방법을 동원한다. 수뢰사건도 그래서 일어났다.
로비고, 코피숍이고간에 어디든 PD만 눈에 띄면 달려가 접근하는 축도 있고 PD나이가 어떻든 무조건 『형님…』하면서 애걸복걸하는축도 있다. 그러나 좋은 음반이 최선의 PR라고 믿는 실력파도 많다.
가수들이 악극단이나 방송국에 소속된 6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가수들에게 매니저라는 독특한 직업의 샤람들이 별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매스컴이 발달하고 연예 비즈니스의 규모가 커지면서 예능만 할줄 아는 가수들을 돌보아야 하는 매니저가 새로운 직업으로 생겨나게 됐다.
65년을 전후해 패티김과 작곡가 길옥윤씨를 맡았던 김병식씨, 동아방송악단과 이미자를 관리한 이한복씨를 우리나라 전문 매니저의 효시로 꼽고 있다.

<김병식씨가 효시>
매니저라는 명칭이 자리잡게된 것은 66년 펄시스터스의 뒷바라지를 한 정용규씨와 그룹 「라스트 찬스」의 매니지먼트를 맡은 박영걸씨가 나선 이후로 볼수 있다.
초기 매니저들은 60년대부터 이미자·하춘화·문주란·남진등의 인기가수들을 거느린 「박춘석사단」의 매니저들과 패티김등을 보유한 「길옥윤사단」으로 대별되면서 거물 작곡가들의 휘하에 있었다.
70년대이후 가수들의 방송활동이 본격화되고 극장식당등에서 유흥업소 출연이 시작되면서 다양해진 연예활동을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매니저들의 위상이 점차 높아지게 된다.
대부분 음반회사나 작곡가들에게 기대어 있던 매니저들은 80년대들어 직접 레코드제작의 일선에 나서면서 수입도 많아지고 프러덕션의 사장으로 격상된다.
연예매니저들의 강력한 협의체로 부상하고 있는 「연예제작자협회」의 회장을 맡고있는 유재학씨(대영기획)는 조용필등 대형가수들을 키웠고 현재는 신해철등 젊은 가수들도 계속 성공시키고 있다.
지난해 살인교사혐의로 구속된 최봉호씨는 70년대부터 하춘화·이주일·나미등을 맡으면서 연예계의 대부로 알려져 왔었다.
「시민회관 리사이틀」이라는 우리나라 특유의 공연문화를 창출해낸 김영호씨는 패티김·윤복희·조영남·최헌·펄시스터스등의 리사이틀로 히트하고 남진을 70년대 최고의 스타로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윤수일·조경수·서울시스터스등을 스타로 만든 김종민씨(JM기획), 74년 송창식의 후견인으로 출발해 김연자·남궁옥분등을 길러낸 유수태씨(Y기획), 방미등을 발굴한 서판석씨(탑기획), 신승훈으로 최고주가를 달리는 사맹석씨(판기획), 변진섭을 데뷔시켜 신화적 히트를 기록한 엄영섭씨(쌍용기획), 최진희·김정수·조갑경·김지애등 연속적인 히트메이커 박남성씨(준기획), 들국화·봄여름가을겨울·신촌블루스등 언더그라운드 음악을 거의 석권한 김영씨(동아기획)등은 아직도 활발한 활동을 하는 매니저들의 대표적 인물로 꼽을수 있다.
정미조를 스타로 만들고 민해경을 대형가수로 만든 이명순씨(코리아뮤직), 희자매·김완선을 배출한 한백희씨(희명기획)는 크게 성공한 여성매니저로서 유명하다.
매니저가 되기전 이들은 쇼단장이거나(김영호·오응수) 작곡가(안치행·엄영섭·김영·이승대), 방송국 프러듀서(이영식·최성근), 기자(윤익삼·김관현), 연극인(김병식·이한복·유재학), 가수(김상범·김호성), 미8군무대출신(박영걸·박웅)등 출신도 다양하다.
여가수의 경우 이선희-윤희중, 주현미-임동신, 김부자-이상문등 매니저와 부부관계가 되는 경우도 있고 최진희·변진섭·김완선등은 오빠 대한씨, 형 요섭씨, 이모 한백희씨가 각각 매니저를 맡고 있다.
음반판매 로열티·방송출연·일반공연·밤무대수입·각종 행사 출연 수입·CF수입등 웬만한 스타들은 매월 수천만원의 큰 수입을 올리고 있어 매니저와의 금전적 거래가 항상 관심과 잡음을 일으키고 있다.
저작권이나 음반 로열티가 불확실하게 계산될때는 수입의 80%이상을 매니저가 챙긴다고 알려져 스타의 돈을 착취하는 존재로 불려지기도 했으나 최근엔 데뷔때부터 수입 배분문제를 문서로 계약해(개별 경우에 따라 갖가지 조건을 붙여) 보통 5대5나 6대4의 비율로 나누기도 한다.

<수입배분 잠음도>
매니저들은 70년대부터 공연단체연합회·프러덕션위원회등으로 협의체를 만들었으나 서로 반목과 대립을 거듭하는 모래알 근성이 있다. 이들은 수뢰사건등 비리의 주역이 되기도 하며 주먹계와도 깊이 연루돼 부정적인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기도했다. 그러나 최근 전문 매니저가 합리적으로 연예비지니스를 이끌어가는 기업형으로 바뀌어 본격적 대중문화의 산실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대형 매니지먼트 사무실에는 4∼5명의 대학을 졸업한 젊은 매니저 지망생들이 묵묵히 궂은 일을 도맡고있고 일류대학을 졸업한 지식인들도 최근 우후죽순격으로 매니저가 되는데 뛰어들고 있는 추세다. 최근 가수매니저들의 사단법인단체로 출범한 「연예제작자협회」(회장 유재학)가 강력한 압력단체로 커갈경우 방송사나 음반회사보다 규모·힘이 큰 한국 대중문화의 핵심이 될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채규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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