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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해야 할 그림 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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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그림이 난리다. 얼마 전 코엑스에서 열린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에서 팔린 미술품 액수가 약 300억원으로, 지난해의 세 배에 달했다고 한다. 몇몇 화가의 작품은 걸리자마자 동이 났다.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사기 위해 수개월 이상 기다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최근 2~3년, 더 정확히는 올 들어 갑자기 미술시장에 돈이 몰리는 이유는 그림이 투자 가치가 있다는 강한 확신 때문이다. 흡사 미술 투자가 황금알을 낳는 오리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그러나 미술품 투자는 일반인의 생각만큼 쉽지 않다. 잘못하면 금쪽 같은 자산을 깡그리 날려버릴 수 있는 위험이 늘 도사린다.

이유를 보면 첫째, 미술 시장은 지극히 한정된 전문가의 영역이다. 정보의 비대칭성이 단적으로 나타나는 시장이다. 그림에 대한 안목과는 별도로 그림 가치를 매기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주식 투자와 같이 투자 기업의 재무제표나 회사 상황 공시 등 객관적 정보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정보를 거의 독과점하고 있는 소수 전문가들에 의해 좌우된다. 그래서 그들의 의견에 종속되기 쉽고 그만큼 위험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전문가들도 수익을 좇는 경쟁자인 데다 일부 전문가는 국내 작가의 작품이 소더비나 크리스티 경매에서 낙찰되는 가격을 강조해 가며 분위기를 띄운다. 이 역시 구매자 신원이 철저히 가려진 상태에서 어떤 목적으로 누가 구매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둘째는 높은 수수료율이다. 일반적으로 미술 경매에서 그림을 살 때 낙찰가의 10% 이상을 지불한다. 그림을 팔 때는 도록 등재비.감정료.수수료.부가세 등을 포함해 25% 정도의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 거래 대부분을 차지하는 화랑을 통하면 일반적으로 30~40% 이상의 수수료가 든다. 이런 구조 속에서 일반인이 기대하는 것처럼 그림을 통해 상당한 수익을 얻는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서울옥션이 1999년부터 7년간 거래된 불루칩 작가의 작품 285점을 분석한 결과 평균 수익률이 12%였다고 한다. 그것도 잘나가는 블루칩 작가만을 기준으로 할 때였다. 이같이 높은 수수료 등을 고려할 때 몇몇 전문가가 목청 높여 주장하는 투자가치로서의 미술품은 다시 한 번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리스크는 미래 가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산 그림이 애물단지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반 고흐의 작품처럼 구입 후 엄청나게 오르는 일도 있겠지만 그런 확률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낮다. 그림은 주식 투자처럼 기대되는 배당도 없다. 게다가 팔고자 할 때 시대 조류가 변했거나 다른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면 그야말로 난감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그림을 사서 매우 낮은 확률로 대박을 기대하는 투기꾼이 아니라면 미술계의 오래된 정설대로 자신의 한달 봉급 정도의 금액을 투자하자. 그래서 미술에 대한 안목과 관심을 높일 수 있고, 가족들이 그림을 보며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그 자체가 행복한 투자가 된다. 그런 그림이 어디 있느냐고? 주말에 가족과 함께 인사동 주변 화랑가를 돌아본다면 내 맘에 꼭 들면서 그만한 가격에 살 수 있는, 열정에 가득찬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그야말로 널려 있다. 혹시 누가 알겠는가. 내 생전은 아니더라도 자식대에 제2, 제3의 고흐 작품을 소장하게 될지 말이다.

박창희 수원대 겸임교수·환경공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