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 칼럼] 권력 감시에 순발력과 끈기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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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옴부즈맨 칼럼을 쓴 것이 오늘로 1년째다. 만 38년이 넘는 기자생활 중 가장 신문을 꼼꼼히 읽은 한 해였다. 타사 동료 언론인들로부터 "그렇게 내놓고 자기 신문 기사를 비판해도 괜찮으냐"는 걱정섞인 얘기도 들었고, 사내 후배들이 섭섭해 한다든가, 칭찬에 너무 인색하다고 불평한다는 말도 많이 전해 들었다.

딱 한번 독자로부터 "중앙일보 PR하는 거냐"고 핀잔하는 e-메일도 받았다. 그때마다 옴부즈맨으로선 중앙일보의 잘못되거나 미흡한 점을 지적해 고쳐나가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둘 수밖에 없다고 대답했다. 비록 약간 창피할지라도 스스로 부족한 점을 드러낼 수 있다는 건 용기와 자신감의 한 표현이라고 믿는다.

그런 차원에서 지난 1년을 되돌아 보자. 우선 권력의 행태에 대한 문제의식과 끈질김이 부족한 것 같다. 대통령과 그 주변에 대한 비판적 기사가 초기 단계에서 빠지거나 타지에 비해 작게 취급된 경우가 적지 않다. 문제될 수 있는 대통령의 발언이 눈에 띄지 않은 때도 꽤 있었다.

최근의 국민적 관심사는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가 과연 공정하냐 하는 점일 것이다. 이 점에 강하게 의문을 제기하는 사례가 바로 썬앤문 사건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고교 후배가 경영하는 썬앤문이 지난해 서울지방국세청의 특별세무조사에서 추징세액을 3분의 1 이하로 낮추는 과정에 당시 국세청장과 盧후보 진영이 간여됐다는 의혹이다.

이미 서울지검은 반년여 전에 썬앤문 측이 盧후보 측근 안희정씨를 통해 盧후보가 국세청장에게 감세 부탁을 해주도록 청탁하고 돈을 주었다는 진술을 확보해 놓고도 별 수사진척이 없었다. 대통령 측근 비리 특검법이 통과된 뒤 대검 중수부가 직접 수사를 맡으면서 이제 이 사건은 盧후보가 부당감세 지시로 구속된 전 국세청장에게 청탁했느냐로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썬앤문 수사가 이렇게 급진전되기까지 보도의 양이나 문제 제기 측면에서 중앙일보는 경쟁지에 비해 미흡했다. 지난 1주일 간의 지면만 보더라도 13일자 경쟁지는 사설을 통해 '검찰은 서울지검 조사부를 조사하라'고 서울지검의 부실 수사를 통박했다. 15일자에선 경쟁지가 사회면 톱 '盧후보가 孫국세청장에 전화'란 제목으로 의혹을 크게 부각시킨 반면 중앙일보는 사회면 3단 기사에서 야당 의원의 발언을 인용, 盧후보가 孫청장에게 감세를 부탁했다는 의혹을 제목없이 기사 본문에만 흘려 넣었다.

경쟁지는 13일 사설 이후 16일 (썬앤문, 전 국세청장 다음 등장인물은), 18일(노무현 후보 전화 걸었나 안 걸었나), 19일(청와대는 썬앤문 전모 털어놓으라) 연속 사설을 통해 盧후보의 감세청탁 여부를 끈질기게 추궁했다. 그 기간 중 중앙일보는 18일자에서 '썬앤문 감세청탁 배후 밝혀라'란 제목의 사설을 한 번 내는 데 그쳤다. 18일자 타지엔 또 1면 톱으로 '노 취임뒤 문병욱씨 따로 초청' 제목의 단독기사가 나왔다.

다음으로는 중앙일보가 표방하는 '열린 보수'란 이념적 지표가 지면에서 잘 느껴지지 않는 때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대북관계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보도하는 데 신중이 지나쳐 소극적이란 느낌을 준 경우가 꽤 있다. 연초 대북 송금 문제가 불거졌을 때도 초기 보도가 다양하지 못했다.

보수-진보 진영에서 경쟁적으로 집회를 할 때는 집회 규모가 엄청난 차이가 있었는데도 너무 균형(?)있게 보도해 보수진영의 불평을 사기도 했다. 송두율 교수를 미화한 KBS의 다큐멘터리와 관련해 시청료 납부 거부운동이 거론되고 宋교수 귀국과 관련된 KBS 이사장에 대해 이사회가 사과와 자숙조치를 취한 사실도 중앙일보엔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기획면에서는 중앙일보 기획기사 중에 뛰어난 것이 많이 눈에 띈 한 해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지금은 노조시대' '신제국 미국은 어디로' '황석영.이문열 시대를 논하다' 등이 시의성이나 깊이와 흥미면에서 시선을 잡았다.

성병욱 중앙일보 고문.세종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