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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대악몽서 벗어나려면(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한일간에 미결의 장으로 많은 논란을 일으켜온 일군 정신대문제에 대한 우리정부의 조사보고서가 나왔다.
31일 발표된 「일제하 군대위안부 실태조사 중간보고서」는 정부차원의 공식조사인데다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일본측이 간접 부인한 강제성의 개재에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이 보고서가 지적한 바와 같이 일본군국주의 정부는 점령지 일본군인들의 성적 위안을 위해 말단행정기관을 동원하여 조선여성들을 회유·기만 내지 강제 등의 수단으로 끌어냈다.
특히 나물캐던 여성을 노예사냥하듯 납치하거나,나이어린 소녀들을 공장에 취업시킨다고 속여 끌어다가 중국·싱가포르·미얀마 등 외국의 전쟁터로 보냈다는 대목도 있다.
일본이 과연 문명국이라면 우선 정신대문제를 부끄러워 할줄부터 알아야 한다. 정신대를 둘러싼 만행은 군국주의시대 군사정부의 행위라고 치자. 그러나 그후에도 일본정부의 개입을 부인하다가 사실에 밀려 시인하면서도 강제성이 있었다는 증거를 발견치 못했다고 발뺌하는 지금 자민당 정부의 태도도 떳떳지 못하고 부끄럽긴 매일반이다.
전시의 외국인 피해자들에 대한 독일·미국·소련정부의 태도를 보라. 서독은 전후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기에 유대인 등 나치정권의 피해자들에게 연금지급 등 손해배상을 하는 조치를 취했다. 소련도 히틀러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던 폴란드군 대량학살 사건을 결국 자기네 행위라고 시인했다. 미국도 2차대전중 수용했던 일본계 미국인들에 대해 응분의 보상을 하지 않았는가. 이러한 외국의 예에서 일본은 교훈을 얻어야 한다.
전쟁의 잿더미위에서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일본은 이제 다시 외국에 군대를 파견할 준비를 끝냈다. 유엔에서는 안보리의 상임이사국이 되어 정치대국으로 발돋움하려는 외교노력을 전개하는 등 다음 세기의 세계패권에 도전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정신대같은 과거문제가 말끔히 해결되지 않는 한 PKO(유엔평화유지활동)의 일본군은 과거의 어둡던 이미지를 떨쳐버릴 수 없을 것이다.
경제력만으로는 지도력이 생기지 않는다. 경제적 힘에 못지 않은 도덕적 책임의식이 뒤따라야 한다. 일본은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과거라 하더라도 역사적 사실을 외면하려 해선 안된다. 잘못된 과거를 인정하고 국민들에게 그러한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교육하며 피해자들에게 응분의 배상을 하지 않고선 국가의 도덕성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 정부도 증거와 증인을 더욱 보강해 일본정부와의 이견을 해소함으로써 양국이 정신대신드롬으로부터 빨리 벗어나도록 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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