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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세상에서 본 작가의 초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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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문학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 들려볼 만한 사진 전시회가 서울 인사동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작가 이장욱(30)씨의 개인전 '작가의 초상'전이다. 신경림.김명인.문정희.김훈.이성복.최승호.성석제.박민규 등 내로라하는 문인 20명의 흑백사진을 감상할 수 있다.

이씨는 대학에서 시를 전공했고 대학원에서 다큐멘터리 사진을 공부했다. 그래서 문인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이 작품마다 그득하다. 어떤 문인에게는 자신의 문학 세계를 표현하는 표정이나 포즈를 잡게 했고, 어떤 문인에게는 작품 속 주인공이 되어달라고 부탁했다. 문학 텍스트에 대한 시각언어화 작업인 셈이다.

그래서 문정희 시인은 사진 속에서 바람 부는 날 가위를 들고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있고, 생태운동을 벌이는 최승호 시인은 양재천 돌다리 위에 쪼그려 앉아있다. 평생을 홍제천 근처에서 머문 김광규 시인은 언덕 위에 올라 홍제천을 내려다보고 있고 '화가 뭉크와 함께'로 등단한 이승하 시인은 뭉크의 대표작 '절규'의 포즈를 재현한다.

정장 차림의 이성복 시인이 엄격한 눈빛으로 정면을 응시하는 사진도 인상에 남는다. 이성복 시인의 '어떤 싸움의 기록'이란 시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이다. 이장욱씨는 "강하지않으면 강하게라도 보여야만 하는 이 시대 아버지의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인사동 갤러리 나우, 22일까지. 02-725-2930.

손민호 기자

▶ 사진 (上) 옥상 위 모퉁이에 한 여자가 서있다. 언뜻 위태로운 듯 보이지만 저 멀리 하늘을 올려다보는 그녀의 표정은 외려 편안하다. 소설가 이명랑. 영등포 시장통에서 태어나고 자라 시장통 사람들 이야기를 소설로 쓴 작가. 이태 전 발표한 소설 '슈거 푸시'에서는 자유를 꿈꾸는 아내들의 속내를 담아냈다. 작가의 뒤편에 빼곡히 들어선 집집 마다 그 아내들의 악다구니가 가득할 것이다.

▶ 사진 (下) 2005년 김민정의 첫 시집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가 나왔을 때 문단은 비명을 질렀다. 어떠한 문법도 그의 언어를 온전히 풀어내지 못했다. 이장욱씨는 김민정 시인의 '고등어 부인의 윙크'란 시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한밤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어 보니/밤의 푸른 냉장고는 고장이 났고/나는 거기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시인은 지금 한창 냉장고 앞에 주저앉아 누구도 알아들을 수 없는 옹알이를 하는 중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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