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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사땅사기가 남긴 교훈(뿌리깊은 사회부조리… 이대론 안된다: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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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시민운동으로 「부패사슬」 끊자/사회 모두의 책임… 방관땐 “위기”/각자 노력하며 주변 감시해야
정보사땅 사기사건은 우리사회의 부패병리현상이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음을 광고한 셈이었다. 이미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할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고리가 얽히고 설켜 제도·조직원이 모두 무력감을 느낄 지경이 되고 말았다.
검찰의 수사발표가 아무리 완벽해도 믿어주지 않으면 범죄에 대한 사회적 응징은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주변을 둘러보면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부패의 먹이사슬에 꿰어 있는데 어느 한 부분만 토막내 『이것이 전부』라고 한들 누가 믿겠는가.
총체적 부패사회라는 일부 학자들의 진단을 다수 국민들은 이번 정보사땅 사건에서 실감한듯 하다.
정치권과 기업,기업과 관청으로 이어지던 부패의 연결고리는 이제 기업과 기업,관청과 이익집단 등으로 확대돼 마치 부패가 제도인듯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각 부패권역안에선 상납이나 분배,또는 묵인·방조가 수직·수평으로 연결되어 있어 부패의 고리를 떠나선 존재하기 어려운 층이 두터워지고 넓어지는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정보사땅 사기사건의 배후에 대한 의혹이 말끔히 가시지 않는 것도 그런 사건이면 으레 등장해야 마땅할 고리 한부분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부패의 공범자중에는 우리사회 전체가 연루되었다는 주장이 크게 망발은 아니다. 공범자는 아니라 해도 방관자에 속한다고 느끼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공범자는 범법자요,방관자는 비겁자다. 범법자와 비겁자가 득실거리는 세상에서 사회정의는 공허한 메아리로 들리는 것이 당연하다.
부패의 사슬을 끊어 탈출하지 못하면 그 사회가 붕괴된다는 것은 동서고금의 진리다.
그러나 부패의 틀이 사회 구석구석 광범위하게 번져있는 판에 누구 하나가 나서 고리를 끊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모두가 남의 탓으로 돌리고 누가 해주기만을 기다리는 것은 더더욱 어리석은 일이다.
따지고보면 총체적 부패를 초래한데는 책임의 높낮이가 있을 것이다. 가장 큰 책임이 권력층의 부도덕성에 있다는데는 대체로 의견이 일치한다. 특히 3공·5공의 권력세력들이 자신들의 취약한 통치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정경유착으로 정치자금과 이권제공을 뒷거래한 것이 부패의 깊이를 더욱 고질화시켰다.
이들이 시작한 정치부패는 6공으로 계속 이어지면서 조금도 개선의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고 오히려 허약한 리더십을 틈타 노골화·대형화하고 있다.
막대한 액수의 선거비용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조달할 수 없다는 것을 당연시하는 세상에서 법과 규율이 통할 수 있겠는가. 후원회나 정치후견자·보스 등으로부터의 정당한 지원은 한계가 있다. 선거비용외에 지구당관리비 등 정치판에 통용되는 자금은 결국 대부분 비정상적 통로로 유통되고 있다.
기업으로부터 유입되면 그 기업에 반대급부를 주어야 하고 공사수주·인사청탁의 반대급부는 국민세금의 남용이나 행정의 난맥으로 그 폐해가 국민들에게 돌아간다.
권력과 금력을 매개로한 정치부패는 국가기강 해이와 공직사회의 부패로 이어지고 끝내는 대형 부정사건과 국민윤리의식의 마비로 연쇄현상을 일으킨다.
부패가 이처럼 탄력성을 얻어가는 것은 우리 사회의 지도층들이 돈·권력·명예를 한꺼번에 거머쥐려는 특권의식을 좀체 포기하지 않는데 가장 큰 병인이 도사려 있다. 청와대와 고위층을 파는 사기사건일수록 규모가 크고,속지 않아야할 사람들이 판판이 속아 넘어가는데서 알 수 있다. 물론 부패가 그들만의 책임일 수는 없다.
차선위반으로 적발되고도 안전띠 미착용이란 엉뚱한 조항의 값싼 벌과금에 만족해한 경험을 오너드라이버들은 갖고 있다. 구청 민원창구에서 인허가와 관련,봉투의 두께를 어느 정도 해야할지 고민한 것도 대부분 경험했을 것이다.
경찰서의 사건관계자치고 한다리 건너 「빽」없는 사례가 드물고,큰 병원 입원대기자 서류에 내로라하는 인사의 부전지 안붙은 경우 또한 찾기 힘들다.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 부패의 고리에 연결돼 있다는 증거다. 무의식중에 몸을 적시는 이러한 작은 고리들이 이어져 대형부정사건이 되고 권력형비리 사건으로 불거진다고 한들 누가 감히 부인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사슬을 끊어내는 작업은 바로 각자의 의식개혁에서부터 시작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이 나온다. 각자스스로 정상적인 규범을 벗어나지 않으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비정상적 행위에 눈감아서도 안된다는 것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을 감시하고 주변을 감시하는 시민운동을 생활화하는 것이 부패의 고리를 끊는 첫 걸음이자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허남진기자><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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