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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사땅사기가 남긴 교훈(뿌리깊은 사회부조리… 이대론 안된다:3)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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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밀실행정이 빚는 구조적 부패/비뚤어진 특권층 행태가 부채질/은밀한 뒷거래로 대형화·고질화
정보사땅 사건에서 오간 뇌물이 보통 10억원대이고 유흥비로만 5억원을 탕진했다는 얘기는 선량한 시민을 기죽이고 울화통터지게 하기에 충분하다.
사기꾼들의 행각은 그동안 말로만 듣던 우리사회 부패구조의 한 단면을 낱낱이 까뒤집어 놓았기 때문이다. 이권이 될만한 건수를 남보다 먼저 눈치채 비합법적 권한을 행사하는 공직자와 잘 만나기만 하면 일확천금을 거머줄 수 있다는 신화(?)가 결코 특권층의 전유물만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사기꾼들은 일부 특권층의 비뚤어지고 타락한 행태를 역이용,우리 사회의 구조적 허구성을 역설적으로 입증해 주었다. 일반인이 접근하기 힘든 군재산,성역으로 과보호됐던 군관계 정보의 독식,변칙금융거래,경영진의 부도덕한 행태 등은 지금까지 일부 계층의 은밀한 뒷거래 수단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암수들은 이제 사기꾼들의 속임수 대상이 될 정도로 보편화 되어가고 있다. 컴컴한 뒷거래위에 피어나던 독버섯의 위력이 일상적인 현상처럼 번져가고 있는 세상에서 부패의 검은 사슬을 누가 끊을 것인가.
군무원·보험회사상무·은행대리를 거쳐간 그 사슬은 우리 사회의 한 줄기를 여지없이 무력화 시키고 말았다. 국방장관의 가짜 고무도장이 부동산 귀재인 보험회사에 통용되어 4백60억원을 사기당하게 한 현실은 특정 배후세력을 캐기에 앞서 우리 사회의 병독현상이 이미 중증에 도달했음을 대변한다.
사례비로 건네주는 돈 액수는 건전한 상식을 가진 사람들의 눈을 뒤집어 놓고 만다. 이같은 사건을 통해 만성화된 부패사회를 구경하는 시민들중에는 자신에게 결여된 「삶의 지혜(?)」를 경탄하는 현상도 있다.
해방후 몇대의 정권을 거치면서 씨를 뿌린 부패구조는 6공후반들이 땅·인허가 관련 사건만 터지면 정·경·관의 3각 유착을 양파껍질처럼 하나씩 벗겨내고 있다.
「수서」사건은 권력의 핵심과 무관하다는 해명을 아직도 충분하게 하지 못한채 정권교체기의 뇌관중 하나로 잠복해 있다. 비록 단순사기로 결론지어졌다고 하지만 정보사땅 사건 역시 국공유지 불하를 둘러싼 이권다툼이란 점에서는 권력형 비리를 많이 닮고 있다.
당국의 주장과 사법처리가 어떻게 되든 「수서」는 국공유지를 매개로 단계를 거치면서 은밀하게 특혜·정치자금조달의 검은 거래가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게 되어있다.
정보사땅 사건 또한 검찰발표를 액면대로 믿지 못하게 할만큼 조직적인 부패의 허점을 안고 있다.
전직 한은총재였던 하영기제일생명사장은 비록 형사소추는 면했지만 조사과정에서 누구를 위해 거짓말을 했겠는가. 스스로 밝히기엔 너무나 창피하다고 생각했거나 그 정도 거짓말은 통용되는 사회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아니면 사실을 공개못할 떳떳지 못한 사연이 있었거나…. 어쨌든 우리사회에 뿌리깊은 구조적 부조리속에 무뎌진 지도층의 윤리의식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탈영병 하나만 생겨도 난리를 치는 국방부가 합참고위관리 출신이 나라전체를 시끄럽게 해도 『군과는 관계없다』고 오불관언의 태도를 보이는 것도 부패구조의 불감증을 엿보게 한다.
뒤늦게 드러났지만 대학 인·허가와 관련해 교육부 직원도 1억원을 받았다고 한다. 「관의 통과의식」에 드는 비용을 대기 위해 다른쪽에 부정을 저질러야 하고 부패는 파노라마처럼 물고 물려 연속된다.
군이 쓰는 재산은 국가·국민재산이다. 이런 재산들을 부패 군무원과 부동산 브로커들이 감히 한탕거리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사회의 심장에 커다란 구멍이 이미 오래전부터 뚫려 있었음을 말해준다.
국방부가 3,4년간 정보사부지 이전 백지화를 번복했다고 하지만 국민들은 몰랐다. 이런 중요한 사안들이 밀실행정의 커튼속에서 결정되니 사기꾼들을 스스로 불러들여 부패를 고질화시킨 것이나 다를바 없다.
모든 면에서 민주화의 가치를 우선시킨 6공이지만 부패의 대형화·고질화란 측면에선 보통사람 최악의 시대를 가져왔다고 해도 변명이 어렵게 되어있다. 오히려 부패척결이란 점에선 되는 것도 안되는 것도 없는 정권의 생리는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한다. 권력개입의 의혹이 짙은 민감한 사건일수록 여전히 전모는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이런 것이 쌓여가는 한 부패는 뿌리를 점점 깊게 넓혀갈 것이다.
권력형 비리는 파헤쳐지지 않는다는 상식이 통하는 한 부패의 사슬은 끊어지지 않는다. 특히 권력이동기에 군부대 땅이 사기꾼들의 공략 목표가 되었다는 것은 관료조직의 기강해이·부패의 만연을 극명하게 드러낸 것이다.
금융사고 재발방지·특혜금융조절대책이 뒤따르나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정도로 끝난다는 것을 국민들은 잘 알고 있다.
부패의 구조화를 차단하기 위해선 대통령을 비롯,권력상층부의 결연한 의지가 절실하다. 그런 다음 총체적 부패를 막는 방법을 논하는 것이 순리다. 임기 7개월을 남긴 노 대통령의 핵심과제가 바로 이것이다.<박보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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