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일하는 미국의 「주부선생님」(특파원코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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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저축 위해 시작”… 직업 귀천의식 아예 없어/깍듯한 친절·몸에 밴 근면 “인상적”
며칠전에 있은 가족끼리의 저녁회식은 매우 즐거웠다. 좋은 음식을 먹고 오랜만의 외식이기도 했지만 즐거움의 원인은 식당의 여종업원 때문이었다.
올해 27세라는 종업원 스테파니는 주문을 받을때는 말할 것도 없고 식사를 하고 있는 동안 끊임없이 찾아와 『부족한 것이 없느냐』『음식맛이 만족스러우냐』며 친절을 베풀었다.
아이들에게도 방학중에 무엇을 하느냐는 등 관심을 보이며 우리가 편안하고 즐겁게 식사할 수 있도록 정성을 다했다.
뉴욕에서 꽤 멀리 떨어진 시골식당인데다 우리가 그곳에서는 보기 드문 동양인이어서 그런가 했던 생각은 잘못이었다.
깔끔한 종업원 유니폼에 흰 앞치마를 두른 스테파니는 음식과 빈접시를 들고 부지런히 테이블 사이를 오가며 다른 손님들에게도 같은 친절을 베풀었다.
미소띤 얼굴로 다시 우리 가족 테이블을 찾아온 스테파니에게 『언제부터 이 식당에서 일했느냐』고 의례적인 질문을 했다가 예상밖의 대답을 들었다.
대학졸업후 고등학교 교사를 하고 있는데 4년전부터 방학때면 학교근처의 이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왔고 결혼했지만 애를 가질때까지는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학교봉급만으론 저축을 할 수 없어 젊을때 열심히 일해 돈을 모으기로 남편과 결심했다는 것이다.
식당일이 즐거우냐는 질문에 스테파니는 『또 다른 내직업』이라며 미소를 짓고 『손님들이 즐겁게 식사를 할 수 있다면 그것이 나의 즐거움』이라고 덧붙였다.
그녀가 테이블을 떠난후 한국에서의 식당모습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손님들에 따라 서비스가 다르고,대개는 딱딱하고 조금은 짜증섞인 종업원들의 표정,일하는 학생들의 가슴에 붙어있는 「아르바이트학생」이라는 신분이 다름을 나타내는 명찰,또 뿌리깊은 직업의 귀천의식과 「천한 직업」을 택할 수 밖에 없는 종업원들에게 반말로 군림하는 손님들의 꼴불견 행태.
스테파니에게 미국사회에서 관례인 식사비의 10%보다 많은 15%의 팁을 흔쾌히 주고 나오면서 우리가족은 흐믓했다.
그 식당과 고교교사인 스테파니를 오래 기억하게 될 것은 물론이다.<뉴욕=박준영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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