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week&쉼] 무욕의 맛 … 홍시죽·연잎쌈 등 북한 사찰음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4면

묘향산 보현사

산사가 있는 높은 산과 험한 바위가 있는 곳은 지혜 있는 수행자가 살 만한 곳이요(高嶽巖, 智人所居),

푸른 소나무가 우거진 깊은 골짜기 또한 수행하는 사람이 머무를 만한 곳이다(碧松深谷, 行者所捿).

배고프면 나무 열매를 먹어 주린 창자를 위로하고(飢木果, 慰其飢腸),

목이 마르면 흐르는 물을 마셔 그 갈증을 식힌다(渴飮流水, 息其渴情).

좋은 음식을 먹고 애지중지 보살피더라도 이 몸은 반드시 무너질 것이며(喫甘愛養, 此身定壞),

비단옷을 입어 보호하더라도 이 목숨은 반드시 마칠 때가 있는 것이다(着柔守護, 命必有終).

평양에서 두 시간 동안 차를 달리는 동안 원효대사가 하신 말씀을 떠올리며 마음을 차분하게 가다듬었다. 18살 사미승이 60살을 넘길 때까지 가슴 깊이 품고 있던 북쪽 사찰음식과의 조우가 현실화된다고 생각하니 수도자의 가슴도 설렘으로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북쪽 사찰음식에 대해선 귀동냥으로 알고 있는 부분은 많았다. 휴전선이 그려지기 전에 금강산.묘향산을 두루 다니며 공부하신 명허스님 등 노스님들의 가르침이 있었다. 그러나 북쪽에 가본 적도 없는데 북쪽의 사찰음식을 소개한다는 것이 비현실적이란 판단에 그동안 자료 공개를 미뤄 왔었다. 그런데 이번에 드디어 남쪽의 종교인 40여 명과 북쪽 땅을 밟은 것이다. 그리고 묘향산의 보현사까지 방문하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서울을 떠나기 전날 명허스님 등에게서 배운 북쪽 사찰음식 자료를 꼼꼼하게 챙겼다. 북쪽에서 만나는 스님들에게 그 내용을 설명하고 반백년이 지난 아직도 그런 음식을 북쪽의 사찰에서 만들어 먹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마음을 다스리는 사이 우리 일행의 버스는 벌써 묘향산 입구에 들어서고 있었다. 눈앞을 가로 막는 높은 산. 쭉쭉 뻗은 빽빽한 노송이 한눈에 가득하다. 싱그러움 사이를 굽이쳐 흐르는 계곡물. 저 멀리 첩첩이 층을 이룬 산. 먼 산은 멀어서 안개인 듯 아지랑이인 듯 아른거린다.

"지리산은 웅장하나 빼어남이 없고, 금강산은 빼어났으나 웅장함이 없다. 그러나 묘향산은 웅장함과 빼어남의 두 가지를 다 갖춘 산이로다." 서산대사의 말씀이 딱 떨어지는 표현이다.

사실 수행자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그중에 으뜸으로 불가에선 식욕을 꼽는다. 그래서 사찰음식은 생으로 먹을진대 익혀서 먹는다는 건 사치일 수도 있다. 사찰음식은 만드는 방법이 간단하고 양념도 절제해 자연에 가깝게 조리해야 한다. 그래서 재료에 맛과 향이 최대한 살아있어야 한다. 양념을 여러 가지 넣거나 재료도 여러 가지를 혼합해 제3의 맛을 내는 것도 조심스러운 일이다. 시각적 효과를 끌어내기 위해 본래의 자연 색을 다른 색으로 착색해 눈을 현혹시키는 것도 삼가야 한다.

버스가 도착한 곳은 꿈에 그리던 보현사. 일주문 앞에 북쪽 스님 네 분이 마중 나왔다. 법당으로 안내를 받아 향초를 올리고 서울에서 가져온 한과들을 부처님께 올리고 예불을 드렸다. 꾸밈없는 사찰 모습은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맞아주었다. 남과 북의 스님들이 마주앉아 상견례를 하고 얘기를 주고받았다. 주지스님 법명은 청운 스님. 스물다섯에 보현사 스님이 돼 이제 일흔둘이나 됐다고 한다.

남쪽 절에 와본 적 있느냐고 물었다. "내래 스물다섯에 중이 돼서리 바로 륙이오가 났시유. 전쟁에 나가서 사우느라 바빳시오. 전쟁 끝나니 삼팔선이 그어졌디요."

스님이 되고 보현사에만 산 것이다. 전쟁 전엔 많은 스님이 수행을 해 염불 목탁소리가 끊이지 않았단다. 절 입구에 들어서면 디딜방아 찧는 소리와 함께 음식 만드는 행자들의 발걸음이 바빴다고도 했다. 노스님들에게 들었던 북쪽 사찰음식에 대한 이야기와 자료를 꺼냈더니 소싯적엔 있었으나 지금은 스님들 생활이 옛날 방식이 아니라서 알면서도 그렇게 해먹지 못한다고 했다.

북쪽 음식 재료는 남쪽과는 많이 다르다. 감자.옥수수.메밀.수수.콩.녹두.고구마.버섯.산나물.잣.고염(재래종 감) 등이 많다. 만드는 방법은 남쪽과 큰 차이는 없지만 감자 두릅밥처럼 밥을 볶다가 짓는 독특한 방식도 있다. 국수를 자주 만들어 먹고, 밥을 해도 옥수수.감자.수수.콩 등 많이 섞는다고. 스님들의 생활방식이 달라져 아쉽게도 북쪽 사찰음식을 직접 맛보지는 못했다. 예전에 고스님들께 들은 자료와 이번 북한 사찰 방문에서 수집한 내용을 종합해 독특한 북한의 사찰음식 몇 가지를 소개한다.

글.요리=정산스님

사진=김성룡기자

#정산스님은

1961년 부산 범어사에 입산해 줄곧 사찰음식 연구에 매진 중이다. 현재 동산불교대학 사찰음식문화학과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인사동 전통사찰음식점 '산촌'대표이기도 하다. 지난 4일 서울을 출발해 3박4일 일정으로 북한 묘향산 보현사와 평양 광림사를 둘러보고 왔다.

직접 만들어 볼까

(1) 홍시죽

■재료=홍시, 쌀, 꿀(설탕)

■만드는 법=쌀을 물에 담가 처음에는 살살 저어 물을 버리고 두 번째부터는 박박 씻어 쌀뜨물을 낸다. 쌀뜨물과 함께 쌀이 푹 무르도록 끓인 다음 홍시를 넣어 한소끔 끓여 꿀이나 설탕으로 단맛을 맞춘다.

(2) 송이 잿불구이

■재료=송이버섯, 무, 호박, 마, 호박잎, 소금, 참기름

■만드는 법=통무의 잎쪽 부분을 자르고 속을 파낸다. 송이버섯과 호박은 작게 깍뚝 썰고 강판에 간 마와 함께 소금 간을 해 빈 무 속을 채운다. 잘라낸 무를 뚜껑으로 덮고 대나무꼬치로 꿰어 고정한다. 거친 호박잎으로 3겹 정도 싼 다음 잿불에 파묻고, 하룻밤 동안 익힌다. 다음날 아침 호박잎을 걷어내고 길게 반으로 갈라 반달썰기 해 참기름 소금장에 찍어 먹는다.

(3) 감자 두릅밥

■재료=감자, 쌀, 두릅, 양념장

■만드는 법=감자는 껍질을 벗겨 굵직하게 썬다. 뜨겁게 달군 솥에 들기름을 두르고 불린 쌀과 감자를 넣고 밥을 짓는다. 뜸 들일 때 두릅을 넣어 감자 두릅밥을 완성한다. 양념장과 함께 내 비벼 먹도록 한다.

(4) 연잎쌈

■재료=어린 연잎, 연근, 오이, 당근, 초고추장

■만드는 법=어린 연잎은 살짝 데친다. 연근은 종잇장처럼 얇게 썬다. 오이와 당근은 곱게 채 썬다. 연잎 위에 연근.오이.당근을 순서대로 올리고 돌돌 말아서 초고추장과 함께 낸다.

(5) 머위 메밀국수

■재료=머위, 메밀국수, 잣, 석이버섯, 소금, 쌀

■만드는 법=머위는 약간 무르게 삶아 껍질을 까고 국수가락처럼 가늘게 쪼갠다. 석이버섯은 가늘게 썰어 볶아 고명으로 준비한다. 메밀국수는 뜨거운 물에 삶아 찬물에 잘 헹궈둔다. 잣에 불린 쌀을 약간 넣고 곱게 갈아 끓인 뒤 소금 간을 해 식혀둔다. 그릇에 메밀국수와 머위를 정갈하게 담고 찬 잣 국물을 붓는다. 석이버섯과 잣 몇 개를 고명으로 올린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