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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사기가 남긴 교훈(뿌리깊은 사회부조리… 이대론 안된다:2)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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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갈수록 심한 「비리 불감증」/잦은 대형사건 면역성만 늘어/범인들 “재수없게 걸렸다” 뻔뻔
시도때도 없이 터지는 대형사건과 부패·비리에 시민들은 지치다못해 만성불감증상태다. 아무리 큰 사건이 나도 반짝 호기심을 가졌다가 곧 시큰둥해져 버리고 범죄인들은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뻔뻔스러우리만치 당당하다.
군관계자·토지브로커·금융기관이 얽히고 설킨 정보사땅 사기사건과 관련자들의 모습은 사회전체에 만연된 비리불감증이 어느 정도인가를 나이테처럼 증명해주고 있다.
주범격인 김영호씨(52)는 정규육사출신으로 육군대령까지 지낸데다 현역 군무원중 최고위직에 있었지만 브로커들과 결탁,평생 몸담아온 군을 미끼로 엄청난 사기행각을 벌인 것으로 발표됐다.
사기꾼 일당중에는 사기한 돈으로 대학을 설립해 교육자행세를 하려한 브로커가 있는가 하면 고객의 돈을 생명처럼 지키기는 커녕 통장을 위조해 유유히 돈을 빼낸 은행대리도 있다.
국내굴지의 보험회사 상무는 고객이 한푼 두푼 맡긴 돈으로 땅을 산다면서 수십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했고 전직 한국은행총재는 끝까지 진실을 은폐하려 안간힘을 썼다.
법을 지키고 사회를 선도해야 할 사람들이 앞장서 법과 질서를 어기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국민들을 더욱 분통터지게 하는 것은 검찰에 연행된 이들 모두가 잘못을 뉘우치기 보다는 한결같이 「재수없게 걸렸다」는 표정이라는 점이다.
모두가 자신들은 억울하고 엉뚱하게 죄를 덮어썼다고 말로,표정으로 항변한다.
비단 이번 사건만이 아니다. 아파트를 짓는다며 수백억원을 가로챈 조춘자여인은 검찰에 붙잡힌뒤 『똑똑한 국회의원 하나를 키워보려 했었다』고 기염을 토했고 TV카메라 앞에서도 생글생글 웃어대 국민들의 분통을 샀다.
부끄러움을 모르고 불감증에 걸려있기는 조직도 매 일반이다.
신성한 국방의무를 수행하고 있는 군이 이유야 어떻든 사기행각에 연루된데 대해 국방부는 국민과 60만 군인들앞에 진심으로 사과했어야 옳다.
그러나 국방부장관의 때늦은 사과성명의 내용은 배후가 없으므로 책임지거나 처벌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유감」이라고 했다.
국정을 책임진다는 여야당도 불감증은 마찬가지다.
정부와 여당은 『배후는 없다. 만일 배후를 밝히려면 먼저 국회안으로 들어오라』며 이 사건을 야당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하려고만 했다.
야당도 『배후가 있다는 증거가 있다』며 책임지지 못할 추리만 늘어놓아 유언비어를 증폭시키는데 일조하다 슬그머니 발을 뺐다.
아무도 진심으로 반성하고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재발을 막기 위한 대책을 진지하게 논의하는 모습도 없다. 적당히 책임을 회피하고 자신들의 이익에 맞춰 사건을 이용하려고만 한다.
다른 모든 대형사건들과 마찬가지로 정보사땅사건도 국민들의 불신과 불감증을 키워놓은채 흐지부지 잊혀져갈 것이 분명하다. 국민들이 범죄에 무신경해져 간다는 것은 당장의 위기를 넘기는데는 편할지 모른다. 하지만 사회정의가 땅에 떨어지고 모두가 불감증환자가 되어가는 사회의 미래는 불을 보듯 뻔하다.
사회전체가 비리불감증에 빠지고 공동체가 붕괴되고 있는 현실을 과연 우리는 이대로 지켜보고 있어야만 하는 것인가.<김종혁·사회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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