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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명성수사” 안풀리는 의혹/찜찜한 「땅 사기」검찰 수사결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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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제일생명 당한 대목 등 안풀려/상식·관행 어긋나는 점 수두룩
정보사부지 매각 사기사건은 검찰이 단순사기극으로 결론을 내리고 수사결과를 발표했으나 배후 또는 비호세력의 개입여부 등 숱한 의혹을 말끔히 해소하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검찰수사는 전합참간부·제일생명·국민은행 관계자와 중간브로커 등 9명을 구속(1명은 예정)하고 이들의 관계를 규명하는 등 상당한 성과를 올린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수사초기부터 검찰 스스로 사건의 성격을 단순사기극으로 규정,수사의 테두리를 한정시킴으로써 배후세력의 개입여부를 명쾌히 규명하지 못했다는 인상을 주었다.
우선 고도의 부동산 정보를 가진 제일생명이 내부적으로 하 사장·박 회장까지 내용을 알고있었음에도 계약성사 여부에 대한 별도의 확인과정 없이 정건중­김영호씨 일당이 맺은 매매계약서 한장만을 믿고 일을 추진하다 4백73억원을 사취당했다는 것은 상식과는 여전히 거리가 있다.
더구나 제일생명은 88년이래 사옥부지 물색과정에서 7차례나 사기를 당할뻔한 경험이 있는데도 소유권 이전등기조차 되지않은 상태에서 계약금조로 2백30억원을 예치하고 유통가능한 진성어음으로 4백30억원의 중도금·잔금까지 완불한 대목은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윤성식상무의 비자금 30억원 조성기도와 8억원 착복 등 개인적인 약점이 원인이었다는 검찰의 설명에도 불구,의혹이 사라지지 않는다.
정씨일당의 행적도 단순사기극의 구도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부분이 많다.
이들은 제일생명을 상대로 「한건」을 올린 뒤인 3월 성무건설을 설립하고 중원공대 설립,대규모 아파트건설 등의 사업을 추진했다.
또 제일생명이 계약해지 사실을 통보한 5월30일 이후인 6월2일에도 자신들이 돌린 어음 60억원을 막기위해 당좌수표를 담보로 내놓고 6월17일에는 17억원의 현금을 지급한 대목은 이면에서 「실제거래」가 이뤄지고 있었을 것이라는 추리를 가능케 한다.
김영호씨가 1월21일 계약금으로 76억5천만원을 받은뒤 도피하지 않고 있다가 6월11일 홍콩 도피직전 정씨일당에게 고스란히 되돌려준 것도 마찬가지 맥락에서만 이해가 가능하다.
이와 관련해 국방부 합동조사단이 김씨의 사기극을 제보받은 시점을 당초의 6월9일에서 6월8일로 번복하고,즉각적인 수사를 미루다 6월11일 홍콩 도피를 결과적으로 「방조」한뒤 6월13일에야 뒤늦게 출국정지 조치를 취한 것도 의심을 자초하는 대목이다.
이처럼 검찰수사가 핵심을 찌르지 못한 것은 소극적인 수사태도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검찰은 7월2일 제일생명이 정건중씨 등 7명을 고소한 이틀뒤인 7월4일 수사에 착수했고 7월6일에야 경찰로부터 국민은행 정덕현대리의 신병을 인수,본격수사에 나서는 등 석연치 않은 모습을 보였다.
성무건설과 강남주택조합에 대한 압수수색도 정씨일당이 자수한지 3∼4일이 지난 11일에야 이뤄진 것도 수사관행상 납득하기 어렵다.
곽수열씨 등 브로커들이 여러대목에서 언급했던 10여명의 배후인물들에 대해서도 검찰은 최소한의 확인과정도 없이 「빙자사기꾼들이 만들어낸 가공인물」로 치부했었다.
그러나 범인들이 청와대·안기부의 비호세력으로 거론했던 사람중에 김모·곽모씨는 현직에 있는 실제인물로 드러났고,「안기부 직원으로 청와대에 파견나간 민영춘」으로 사칭했던 민씨도 곽씨로부터 14억원을 받은 실존인물로 밝혀져 뒤늦게 수배되는 등 검찰이 소극수사로 일관했다는 비난을 면키어렵게 됐다.
검찰은 또 국방부내 김영호씨 비호세력의 존재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수사는 회피한채 실무자 2명만을 불러 군부대 땅의 수의계약 불가사실만을 확인했을 뿐이다.
박남규회장,하영기사장에 대해서도 이들이 처음부터 정보사부지 매입계획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심증을 굳히고도 『하 사장만 「사후보고」를 받았다』는 당사자들의 진술을 액면대로 받아들여 배후세력과의 「밀약」가능성을 파고들지 않았다.
결국 「의혹」에서 시작해 「또 다른 의혹」을 남기고 끝난 이번 사건 수사는 지난해 수서사건과 올해 안기부원 흑색선전물 사건때처럼 핵심을 비껴간 해명성 축소수사라는 비판을 면치 못하게 됐다는 것이 지배적인 여론이다.<이하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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