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더 이상 국경은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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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영화제 개막작 ‘마이 블루베리 나이트’의 왕자웨이 감독과 배우 노라 존스.주드 로(오른쪽부터)가 16일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칸 로이터=연합뉴스]

"주드! 주드! 노라! 노라!" 총 대신 카메라로 무장한 수백 명의 취재진이 스타의 눈길을 앵글에 담기 위해 한껏 소리 높여 이름을 부른다. 세계 영화계의 첫 손꼽히는 잔치인 칸영화제가 16일 개막한 것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남부 지중해의 눈부신 햇살이 내리쪼이는 가운데 주행사장인 팔레 드 페스티발 주변은 전세계 3만여 명의 영화관계자는 물론이고, 행사를 기웃거리는 관광객들까지 몰려 한껏 붐비기 시작했다.

60회를 맞는 올 영화제는 개막작 '마이 블루베리 나이트'가 제때 도착한 것만으로도 일단 시작이 순조롭다. 대담하게도 상영이 임박해서야 영화제 출품작을 완성하는 것으로 유명한 홍콩 왕자웨이(49.王家衛)감독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2004년 칸 폐막작이었던 '2046'은 상영 직전에야 공항에서 오토바이를 통해 아슬아슬하게 필름을 공수한 일화가 있다. 16일 낮 기자회견에서 왕 감독은 "이번 영화를 개막작으로 한 것은 그래서"라고 농담을 해 좌중을 웃겼다.

'마이 블루베리 나이트'는 변절한 사랑에 연연하는 여자(노라 존스)와 언제 올지 모를 사랑을 기다리는 남자(주드 로)가 심야의 조그만 카페에서 주인과 손님으로 마주치면서 시작하는 이야기다. 미국을 무대로, 미국배우가 영어로 연기한 작품임에도 감독 왕자웨이의 낙인이 뚜렷했다. 사소한 사물에 담긴 상징성을 강조하면서 감각적인 화면에 찰나적 감성을 잡아내는 점이'중경삼림' 같은 홍콩시절 영화를 연상시킨다. 기자회견에서는 싱어송라이터로 주목받는 재즈 가수 노라 존스의 영화 데뷔작이라는 점도 화제가 됐다. 감독은 "노라 존스의 영화적인 목소리에 끌렸다"면서 "처음부터 노라 존스를 생각하고 만든 이야기"라고 말했다.

'마이 블루베리 나이트'는 이처럼 홍콩 감독과 미국 배우에 프랑스 자본이 결합한 다국적 영화다.

메인 상영관인 뤼미에르 대극장 전경.

개막작의 이런 성격은 국경을 넘어 세계영화계를 아우르려는 칸의 야심을 상징하는 듯 보인다. 질 자콥 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앞서 올해의 특징으로 "전통과 현대, 거장과 신진의 융합"을 꼽았다. 22편의 공식경쟁작에는 이미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거장 감독과 베니스.베를린 등 경쟁영화제에서 조명받은 신예감독이 고루 포진했다. 한국 영화로 경쟁부문에 진출한 김기덕 감독의 '숨'과 이창동 감독의 '밀양'은 각각 19일, 24일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16일 오후 독일 여배우 다이앤 크루거의 사회로 진행된 개막식에서는 최고령 현역 감독으로 꼽히는 포르투갈의 마누엘 데 올리베이라와 대만 출신 여배우 수치(舒淇)가 개막을 선언했다. 개막작과 별도로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단편 '부조리'가 60주년 깜짝 선물로 상영됐다.

올 칸에는 할리우드에서도 손꼽히는 톱스타가 여럿 참석한다. 환경 다큐멘터리 '11번째 시간'의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오션스 13'의 브래드 피트와 조지 클루니, '마이티 하트'의 안젤리나 졸리 등이 모두 공식 상영작과 함께 나타날 예정이다.

칸=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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