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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고기값 40%가 유통 마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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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2001년부터 쇠고기 수입이 본격화하면서 몇 년간 수입 쇠고기값은 떨어졌다. 2001년 ㎏당 7430원(호주산 냉동 불고기 기준)이었던 수입 쇠고기값은 2003년 6914원으로 하락했다. 그러나 2004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금지되면서 수입 쇠고기값은 다시 올랐다. 매년 29만t에 이르던 쇠고기 수입물량이 2004년부터 13만 ~ 15만t 규모로 줄자 수입 쇠고기값은 2005년 21%, 2006년 23% 상승해 ㎏당 1만450원까지 뛰었다. 이처럼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금지되는 동안 호주 업체들이 큰 이익을 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003년 7000원대(도매가)였던 호주산 갈비 1㎏이 올 초 2만원대까지 오르는 등 호주 쇠고기값은 국제 시세의 1.5~2배로 뛰었다.

반면 쇠고기 수입에도 한우값은 떨어지지 않았다. 한우값이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한 것은 2001년. 당시 쇠고기 수입 자유화를 앞두고 축산농가들이 소값 하락을 걱정해 앞다퉈 소를 내다 팔았다. 1998년 283만 마리였던 한우 사육 마릿수는 2001년 140만 마리로 3년 만에 절반이 되었다. 하지만 수입 자유화 이후에도 한우를 찾는 사람은 여전했고 이때부터 한우값은 고공 행진을 계속했다. 2004년 이후엔 수입 쇠고기값이 오른 데 편승해 한우값이 또 올랐다. 농림부 민연태 축산정책과장은 "소를 너무 잡아 한우 공급이 부족해진 2001년 쇠고기값이 오르기 시작했고 2004년 미국산 쇠고기 반입이 중단된 게 쇠고기값을 다시 한번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 쇠고기 유통 마진 급증=600㎏ 한우 수소의 생산지 가격은 2001년 389만4000원에서 지난해 425만1000원으로 9.1% 올랐다. 같은 기간 한우 등심 1㎏의 소비자 가격은 2만3724원(전국 연간 평균.3등급 기준)에서 4만7500원으로 100% 뛰었다. 5년간 소비자 가격 상승률이 한우값 상승률의 10배를 넘은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가격 차이가 중간도매상 및 판매점들의 마진으로 흡수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중간도매상과 판매점이 챙긴 유통 마진이 2002년 쇠고기값의 22.9%에서 지난해 39.3%로 커진 게 이를 입증하고 있다. 농수산물유통공사에 따르면 횡성 한우의 경우 지난해 농가에서 평균 488만6359원에 판 소가 정육점 등에서 고기 형태로 팔릴 땐 평균 805만1191원으로 값이 뛰었다. 이 중 축산농가의 순수익은 산지 소값(비육우 기준)의 11% 정도인 마리당 59만원 수준에 불과했다. 반면 중간상과 판매점의 마진(도축 비용 등 포함)은 마리당 310여만원에 이른 것이다.

지난해 축산농가가 횡성 한우를 판 가격은 마리당 488만여원인데 쇠고기로 팔릴 땐 805만원이었다. 40%에 이르는 유통 마진 때문에 쇠고기값이 비싸다는 얘기다. 우시장에서 소를 판 축산인이 소값으로 받은 돈을 손에 꼭 쥐고 있다. [중앙포토]

중간상들의 입김이 이처럼 센 것은 국내 축산농가가 영세하기 때문이다. 전체 한우 농가 19만8000호 중 84%에 이르는 16만7000호가 20마리 미만의 한우를 키우고 있다. 50마리 이상을 키우는 대규모 축산농은 7000호에 불과하다. 대부분 농가의 규모가 영세하다 보니 가격 결정력이 떨어져 중간상에게 휘둘리기 쉬운 것이다.

최종 소비자가격도 천차만별이다. 소비자를 위한 시민모임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쇠고기(1+등급 기준)의 경우 서울에서만 최대 60%, 전국적으로는 두 배 이상 차이가 났다. 이는 각 판매점들이 지역이나 주 소비계층에 따라 제품의 가격을 달리 책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촌경제연구원 허덕 연구위원은 "대형 유통업체뿐 아니라 소규모 영세 정육점들까지 판매 마진을 높게 잡아 소비자가격이 올라가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 삼겹살값도 덩달아 올라=쇠고기값이 오르면서 돼지고기값도 같이 뛰었다. 쇠고기값이 오르자 쇠고기 대신 돼지고기를 먹는 사람이 늘었기 때문이다. 2001년 돼지고기 삼겹살 1㎏의 평균 가격은 8436원(중품)에서 2006년 1만5360원으로 배 가까이 올랐다. 돼지고기값 역시 쇠고기값 상승세와 비슷한 추세를 보였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이후 돼지고기값이 떨어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한양돈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4월 1㎏에 1만1090원이던 냉장 삼겹살값이 올 4월엔 8514원으로 낮아졌다. 쇠고기값이 떨어지면 돼지고기 소비가 줄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다.

■ 한우 '신뢰 높이고 값 내리기' 어떻게 …

최근 할인점에서 팔리는 한우 가격은 지난달에 비해 5 ~ 10%씩 떨어졌다. 지난달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재개된 데다 사육되는 한우가 200만 마리를 넘어서면서 한우 공급이 대폭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서진교 연구위원은 "쇠고기값은 수입산보다 국내 한우의 수급에 더 크게 좌우된다"며 "최근 사육되는 한우가 200만 마리를 넘어서면서 한우 가격이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직거래로 값 낮춘다=최근 유통 비용을 줄여 한우 가격을 낮추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인터넷 쇼핑몰을 활용함으로써 인건비.임대료.유지비 등을 줄이려는 시도다. 또 저가 쇠고기 전문 판매점들은 호주.뉴질랜드산 쇠고기를 1인분에 6000~9000원에 팔고 있다. 오래드림 박창규 사장은 "해외에서 직수입하기 때문에 중간유통 업체를 거치지 않고 가공공장을 직접 운영하고 있어 별도 이용료를 내지 않아도 되므로 싼값에 판매해도 충분한 이윤을 남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명품 한우로 알려진 '횡성 한우'도 횡성 한우 플라자와 인터넷 등을 통해서만 판매해 유통비용을 줄이고 있다. 횡성군청 축산과 홍춘기 계장은 "중간유통상을 거치면 값이 오를 뿐 아니라 질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횡성 한우는 100% 직거래해 값이 싸면서 질이 좋다는 인식을 굳히고 있다"고 말했다. 농협도 낮은 가격에 한우를 파는 쇠고기 전문점 '웰빙식당'을 열기로 하고 가맹점을 모집 중이다.

◆ 소비자 신뢰 얻어야=어느 식당에 '순국산 참숯 쇠고기'란 간판이 붙어 있었다. 주인은 "국산 쇠고기란 뜻이 아니라 '순국산 참숯'으로 구운 쇠고기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우스갯소리가 퍼질 만큼 한우를 믿고 먹기 어려운 상황이다. 수입산 쇠고기가 한우로 둔갑해 팔리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수입산 쇠고기가 몰려와도 한우가 살 길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한국종축개량협회 이종헌 박사는 "한우 브랜드의 신뢰도가 높지 않은 상태에서 브랜드만 내세워 높은 값을 받으려 하면 소비자가 외면한다"며 "비싼 만큼 맛도 좋고 믿을 수 있어야 수입산과 경쟁할 수 있다"고 말했다.

농촌경제연구원 허덕 연구위원은 "수입산이 한우로 둔갑하는 것을 철저히 가려내는 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내년에 쇠고기 생산이력제가 시행된다. 한우 200여만 마리의 사육.도축.가공.판매 등 전 과정을 소비자가 한눈에 알 수 있게 되는 생산이력제가 한우의 신뢰를 높이면서 유통 거품까지 뺄 것이라고 정부는 기대한다. 유통 단계별 가격까지 나타나기 때문에 특정 유통 업체가 가격 부풀리기를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농림부가 현재 300㎡(약 90평) 이상 대형음식점에만 적용되는 음식점 원산지표시제를 모든 음식점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한우협회가 한우 판매인증점을 늘리는 것도 소비자 신뢰를 얻기 위한 것이다.

특별취재팀=이세정.이현상.김창규.박혜민.문병주 기자(경제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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