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사이에 두고 '그린의 양김' 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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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한국 남자 골프에 두 태양이 뜨고 있다.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투어의 신인 김경태(21.신한은행)와 미국 PGA 투어 루키 앤서니 김(22)이다. 김경태는 데뷔하자마자 2경기에서 모두 우승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앤서니 김은 신인으로 톱 10에 세 차례나 든 것도 대단하지만 타이거 우즈나 필 미켈슨 등 최정상급 선수에게 힘에서 밀리지 않는 첫 동양 선수다.

한국 골프계에서는 10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한 대형 선수가 동시에 등장한 사건으로 보고 있다.

두 선수는 젊고, 김씨 성을 가졌으며 골프 선수로서는 그다지 크지 않은 체구라는 공통점이 있다. 김경태는 한국에서, 앤서니 김은 미국에서 국가대표를 지냈고 아마추어 시절에도 굵직굵직한 우승컵을 차지한 엘리트다.

그러나 스타일은 정반대다. 김경태는 정교하고 앤서니 김은 폭발적이다. 김경태가 미국 메이저리그의 그레그 매덕스 같은 컨트롤 투수라면 앤서니 김은 놀런 라이언 같은 강속구를 던진다.

김경태는 갤러리가 보기에 재미가 없을 정도로 샷이 정확하다. 항상 페어웨이로만 다녀 트러블샷을 할 기회도 별로 없다. "OB(아웃 오브 바운스)가 많은 한국 골프장에 적응하려고 그랬다"고 한다. 드라이브샷 거리는 280야드 정도로 긴 편은 아니다. 아이언샷이 특기며 퍼팅도 매우 좋다. 아이언샷을 핀에 붙여 버디를 잡거나 버디 퍼트를 핀에 붙이기 때문에 그린에서도 아슬아슬한 장면이 거의 없다.

반면 앤서니 김의 드라이브샷 거리는 300야드가 넘는다. PGA 투어에서 5위다. "타이거 우즈만큼 거리가 나지 않으면 우즈를 이길 수 없어 장타 연습을 많이 했다"는 설명이다. 드라이버는 최고지만 아이언샷과 퍼팅은 아니다. 파3 홀에서 앤서니 김의 성적은 투어에서 163위에 불과하다. 파 4홀에서는 11위, 파 5홀에서는 14위다.

성격도 정반대다. 평소 순둥이인 김경태는 선배들에게도 끔찍하게 공손하다. 그러나 필드에서는 '능구렁이'가 된다. 투어 개막전 최종라운드에서 '독사' 최광수(동아제약)와 대결했는데 최광수가 오히려 말렸다.

앤서니 김은 "타이거를 잡으러 왔다"는 등 거침없이 말을 쏟아내는 다혈질이다. 선배들에게 기죽지 않으려 인사도 하지 않는다. 버디를 많이 잡지만 트리플 보기도 자주 나온다.

김경태는 17일부터 나흘간 경기도 용인 레이크사이드 골프장에서 열릴 XCANVAS오픈에서 3연승을 노린다. 3연승은 2000년 최광수가 달성한 뒤 6년 동안 나오지 않았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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