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대표 말솜씨/계산됐나 실수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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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타당대표에 “이봐요”·자주 말막아/이무기·굼벵이론 등 독설 펴기도
정주영 국민당대표가 공사석에서 거침없이 쏟아놓는 말을 놓고 말들이 많다.
지난 14일 민주·국민 양당 대표회담에서 정 대표는 김대중대표가 회담중 자리를 박차고 나갈 정도로 기분을 상하게 했다.
대표회담에 배석했던 양쪽 당직자들이 언쟁을 말리면서 『잠시 쉬면서 감정을 가라앉히고 회담을 계속 하겠느냐 아니면 두분이 먼저 가겠느냐』고 묻자 두사람 모두 『가겠다』고 해 악수도 하지 않은채 헤어졌다. 근본적인 이견에서 시작된 논쟁이었지만 정 대표의 반말투가 김 대표를 화나게 한 것 만은 틀림없다는 것이 배석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정 대표는 회담에서 손을 내저으며 『이봐요』하고 김 대표의 말을 가로막은 경우가 많았고 그때마다 김 대표의 표정이 일그러지면서 끝내 『이럴수가…』라고 낙담했다고 한다.
확실히 정 대표의 말투는 정치인답지 않은 점이 있다. 앞뒤 재고 요리조리 돌린 표현을 쓰지않고 생각한 바를 여과없이 뱉어낸다. 좋게 말하면 직설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거친 느낌을 준다.
정 대표와 장시간 토론한 적이 있는 한 정치학교수는 『순발력과 유머감각은 뛰어나다. 하지만 다듬어지거나 논리적인 언변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 대표의 측근들은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말이라 오히려 논리적인 것보다 호소력이 있다. 말의 재치는 그의 두뇌회전이 빠르다는 반증』이라고 주장했다.
정 대표가 즐겨쓰는 대표적 비유와 풍자는 「이무기」「굼벵이」「빈대」론이다.
「이무기론」은 양김 비판용인데 『용은 단 한번만에 하늘에 오른다』는 경구를 확대해석,『올라가다 떨어지면 이무기가 되고,다시 또 떨어지면 미꾸라지가 된다』는 것이다.
대선에서 한번 실패한 김영삼후보는 「이무기」며,두번 떨어진 김대중후보는 「미꾸라지」라는 얘기다. 그러면서 『이무기·미꾸라지와 싸우니 이기지 않을 수 없다』는 식이다.
그는 정치선배인 양김씨를 비화하기 위해 『정치가 사업보다 더 쉽다』는 말을 자주 써 먹는다. 쉬운 이유는 『사업하다 실패해 부도내면 형무소가지만 정치는 그런 일 없기 때문』이며 『사업에서는 세계경제계의 최고 두뇌들과 싸워야 하지만 정치에서는 머리나쁜 양김씨 두사람과 경쟁하기 때문』이라는 것.
「굼벵이론」 역시 YS의 무능을 꼬집는 무기다. YS는 『머리가 모자라』『정치적 두뇌가 없어』라고 말한뒤 『굼벵이도 지붕에서 땅으로 내려가는 재주가 있다』고 말해 좌중의 궁금증을 모은다. 그런뒤 『궁금하죠. 어떻게 하냐하면 뒤뚱뒤뚱 굴러서 「뚝」 떨어지는 거다』라고 웃긴다.
「빈대론」은 재계시절부터 사용해온 체험적 좌우명이기도 하다. 부두노동자시절 합숙소에 빈대가 많아 식탁위에 자면서 식탁다리마다 물그릇을 받쳐 빈대의 접근을 막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며칠뒤 빈대가 물어 자세히보니 벽을 타고 천장으로 올라가 가슴을 향해 뛰어 내리더란 것. 그때 『빈대도 저렇게 머리를 쓰고 노력하는 구나』라고 깨달았다는 것이다. 정치학회 연설에서도 『사는데 빈대덕을 많이 봤다』며 빈대론을 펼쳐 웃음을 자아냈었다.
하지만 이날 좌중의 예정되지 않았던 웃음은 정 대표의 「아리스토텔레스」 인용이었다. 참모가 써준 메모를 보며 얘기하던중 긴 이름을 외지 못해 『아리스토…』까지만 얘기하다가 다시 메모를 뒤적이자 정치학자들이 폭소,이어 『텔레스씨가』라며 「씨」자를 붙이자 다시 폭소.
이같이 준비되지 않은 발언때문에 종종 문제가 생긴다. 6월8일 「공산당」 발언이 그 대표적 예. 「결사의 자유」를 강조하다가 헌법전문의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공산당결성까지 「헌법에 따라」 인정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준비되지 않은 얘기는 매우 직설적이기도 하다. YS를 비판하면서 정 대표는 『지난 대선에서 당선된 노 대통령도 나라를 이꼴로 만들었으니,떨어진 사람은 쓸모없다』『나쁜일 많이 해 머리가 허옇다. 젊은 애들이 머리 물들이고 다닌다』는 등 듣는 사람을 긴장시킨다.
대우의 김우중회장은 아예 「밥」이다. 정권교체기에 권력과 붙어먹는 사람 등등….
그러나 정 대표의 이같은 발언에 김영삼대표는 일체 상대도 않고,반응도 드러내지 않는다. 정 대표의 좌충우돌식 발언을 놓고 『의도적인 신문 가십플레이』라는 시각과 『살아온 경력에서 보듯 천박하다,노인성현상이 나타난 것』이라는 등 해석이 구구하다.<오병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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