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선민기자의가정만세] '못된 엄마' 콤플렉스여 안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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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세 돌이 막 지난 아들을 재울 때마다 매일 밤 작은 실랑이가 벌어진다. 하루종일 헤어져 있다가 엄마와 단둘이 있게 돼 설레는 아들과, 퇴근 후 녹초가 된 엄마. 둘의 대화는 일방적이다. 아들만 떠든다. "엄마, 내일 어린이집 간식은 뭐야?" "엄마, 천장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요" "엄마, ○○(친구 이름)가 내일 어린이집에 안 올까봐 걱정이 돼요" "…".

입은 묵언수행이라도 하듯 굳게 다물고 있지만, 엄마의 머릿속은 컴퓨터 하드 돌아가는 것처럼 윙윙댄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프리즌 브레이크'를 보고 자야 하는데(스코필드가 국경을 넘으려다 FBI에 잡혔단 말이다)' '운동부족인데 아파트 근처라도 한 바퀴 돌고 와야 하는 거 아닌가(S라인은커녕 누구 말마따나 ㅁ자형 얼굴에 b자형 몸매가 돼가는 내 신세라니)' 등등.

회사 동료들한테 이렇게 말했더니 입을 쩍 벌린다. "세상에…너무한다, 너무해." 거의 '엄마 맞아?' 하는 까칠한 시선. 우리 아들은 순식간에 '가엾은 아이'로 추락한다. 아, 아이를 한시바삐 재워놓고 영화를 보거나 산책할 생각을 하는 나는 정녕 못된 엄마란 말인가.

여섯 살 외동딸을 둔 지인에게 "맞벌이가 아닌데, 아이를 왜 하나만 낳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제가요, 너무 이기적이라서요." 그녀의 조심스러운 대답이었다. 대학시절 전공을 살려 여기저기에 글쓰기와 모니터 활동을 하는 그녀. 아이 뒷바라지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의 최소공배수가 '아이 하나'였다는 얘기였다.

이기심과 엄마 역할은 썩 잘 어울리는 짝은 아니다. 엄마 하면 헌신이나 희생과 거의 동의어니까. 내가 '못된 엄마'는 아닐까, 남들이 날 '못된 엄마'로 보진 않을까를 둘러싼 스트레스는, 단언컨대 모든 여성에게 내재돼 있다. 그러나 사람마다 능력이 다 다른데, 모성애의 절대량이나 그것을 발휘할 수 있는 폭을 백과사전식으로 정의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 않을까.

최근 '엄마의 마음자세가 아이의 인생을 결정한다'라는 책을 읽었다. "어떤 엄마도 완벽하지 않다. 그 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자녀와의 관계가 제대로 맺어진다"는 메시지에 100배 공감했다. 정신과 의사인 지은이는 "출산 후 남들에게 덜 매력적으로 보인다든지, 사회에서 경력을 쌓는데 방해가 된다는지 하는 이유로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느낄 경우 여성은 그것을 떳떳이 인정해야 한다"고 권한다. 그것을 감추다 보면 왜곡된 스트레스가 아이에게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을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고 요약하는 건 나같이 허점 많은 엄마의 자기합리화에 불과한 걸까. 그래도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전제돼 있다면 건강한 이기심은 아이와 엄마 모두 윈-윈 하는데 필수 요소라고 믿고 싶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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