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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주의에 빠진 국회 두 표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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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내년 예산안의 연내 처리가 어려워졌다. 예결위 계수조정소위 위원장직을 누가 하느냐를 놓고 각 당이 밥그릇 싸움을 벌이고 있는 탓이다. 이에 따라 내년 예산의 정상적인 집행도 어려울 전망이다. 지금까지 새해 예산안 처리가 해를 넘긴 적은 없었다.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12월 2일)은 벌써 넘긴 지 오래다.

◇네 탓 공방=민주당 소속인 이윤수 예결위원장과 한나라당이 계수조정소위 위원장으로 밀고 있는 박종근 의원은 18일 오전과 오후 각각 기자회견을 열고 예결위 파행에 대한 책임 공방을 벌였다. 李위원장과 열린우리당 간사인 이강래 의원은 “소위 위원장직을 양보한 것을 비롯해 두 차례나 물러서기를 거듭했지만 한나라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예결위를 독단적으로 운영하려 한다”며 “예산안 심사 지체는 한나라당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李위원장은 “홍사덕 총무가 한나라당의 요구를 받아들일 것을 설득하다 ‘정 안 되면 준예산으로 할 수밖에’라는 말도 했다”며 “이는 다수당의 횡포며 예결위를 원하는 대로 운영하겠다는 뜻”이라고 비난했다.

오후엔 한나라당 박종근 의원이 이를 반박했다. 朴의원은 “이윤수 위원장이 내가 소위 위원장을 맡는 데는 동의했지만 ‘소위 위원장은 원만한 회의 진행에만 전념한다’는 말도 안 되는 조항을 고집하고 있다”며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결위 전체 회의를 열어 이 문제를 결정하자”며 다수결을 요구했다. 朴의원은 “지금이라도 다른 한나라당 소속 의원이 소위 위원장을 맡으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주장에 대해 “내가 당 예결위원장이며, 이미 소위 위원장을 맡기로 돼 있다”며 “양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특정인 놓고 논란=지난 10일 3당 간사는 한나라당 이한구 간사가 소위 위원장을 맡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朴의원이 소위 위원장을 맡아야 한다며 합의를 번복했다. 그 후 예결위는 일주일간 표류했다.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은 “과거 추경예산심의 때 朴의원이 독선적 소위 운영을 했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여론의 비난이 격해지자 17일 이윤수 위원장과 이강래 간사는 소위 위원장직은 朴의원이 맡되 권한을 제한하자는 절충안을 제시했다. 한나라당은 “무기력한 소위 위원장을 만들려는 것”이라며 거부하고 있다.

김기식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예산안 처리 법정 시한을 넘긴 마당에 자리 다툼을 하느라고 나라 살림을 방기하는 것은 의원으로서 자격을 상실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회 관계자들은 “특정인을 계수조정소위 위원장에 앉히겠다는 고집과, 이에 대한 거부로 예산이 볼모 잡히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개탄했다.

신용호 기자

18일 열린 국회 본회의의 처리 안건에는 검찰이 제출한 국회의원 7명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포함되지 않았다. 19일 열릴 예정인 본회의에도 체포동의안은 안건에 빠져 있다. 본회의 상정 일정조차 아직 미정이다.

이 때문에 새해 예산안,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처리 등을 이유로 지난 10일 시작된 임시국회가 역시 ‘방탄국회’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달 초 정치권은 임시국회의 필요성을 밝히면서 “방탄국회라는 오명을 쓰지 않도록 체포동의안을 조속히 처리할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현재 국회에는 열린우리당 정대철, 한나라당 최돈웅·박주천·박명환·박재욱 의원, 민주당 박주선·이훈평 의원 등 7명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제출돼 있다. 이 중 박주천·박주선·이훈평 의원은 신상발언 등을 통해 동의안의 조속한 처리를 요구한 바 있다.

여야는 일단 “아직 총무간에 협의가 덜 돼 상정이 안 됐다”고 밝혔다. 한나라당 홍사덕 총무는 “예산안을 처리할 때 같이 처리할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과 열린우리당도 조속한 처리에는 이의가 없다. 이 때문에 올해 말이나 다음달 초 임시국회 마지막 본회의에 체포동의안이 상정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막상 상정이 되더라도 체포동의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민주당 관계자는 “자유투표로 할 경우 누가 동료 의원을 잡아가라고 동의하겠느냐”고 했다. 국회법에 따라 체포동의안은 무기명으로 표결하는 것도 이 같은 분위기를 뒷받침한다. 洪총무도 “어차피 검찰에서 기소는 할 텐데 의원들이 굳이 동료 의원이 구속되는 것을 바란다면 찬성표를 던지겠지”라며 다소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체포동의안이 부결될 경우 국회는 또다시 ‘비리 동료 의원 감싸기’라는 비난을 면키 어려워 이래저래 체포동의안 처리는 뜨거운 감자인 셈이다.

강갑생 기자 <kkskk@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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