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도 이런 청년이…칼부림 육탄 저지한 당찬 대학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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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우리 아줌마를? 안돼!"

지난해 9월 대학생 김분도(22)씨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충격적인 경험을 했다. 김씨는 그날 집 근처 지하철역 앞으로 친구들을 만나러 나갔다. 그런데 노상에서 칼부림이 일어났다. 한 남자가 50대 여성을 칼로 찌르고 있었는데 여성은 다름아닌 김씨의 단골 샌드위치 가판대 주인 아줌마였다. 김씨는 본능적으로 남자에게 달려들어 허리춤을 잡고 뒤로 끌어당겼다. 화가 난 남자는 시뻘개진 눈으로 김씨를 돌아보며 "너도 칼에 찔려 죽고 싶어"라고 고함을 쳤다. 김씨는 순간 당황했지만 '이러다간 아줌마나 나나 죽겠구나'하는 생각에 남자의 손에 잡힌 칼을 뺏어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남자는 욕설을 내뱉으며 칼을 다시 주우려고 했지만 때마침 출동한 경찰에 연행됐다.

'칼부림 육탄' 저지한 당찬 대학생 김분도(22)씨

경찰 조사 결과 남자는 40대 박모씨로 지하철역 인근에서 무허가 노점상을 운영해 왔다. 구청의 정식허가를 받고 가판대를 운영하는 피해자 최모(58.여)씨가 박씨를 신고하자 언쟁 끝에 칼을 들었다는 것이다. 오후 8시 퇴근 시간이라 칼부림 현장에는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지만 누구 하나 최씨를 구하기 위해 달려든 사람은 없었다. 최씨는 등과 목에 중상을 입고 아직도 회복 중이다.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된 박씨는 1심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17일 서울고법에서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박씨측 이준 변호사는 "순간적인 충동으로 칼을 들었던 박씨를 김씨가 제지해 줘 박씨가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1심 재판부는 집행유예 선고 이유로 박씨의 범행이 미수에 그쳤고 박씨가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원래 불의를 참지 못하느냐'고 김씨에게 물었다. "그건 아니고 생전 처음 칼로 사람을 찌르는 것을 봐서 순간적으로 달려들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김씨는 박씨와 몸싸움을 하는 과정에서 오른팔이 찢어지는 상처를 입었다. 김씨는 "칼에 베인 것보다 조금 심한 수준"이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3년전 뇌졸중으로 쓰러져 장애가 있는 아버지와 재봉일을 하는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김씨는 원래 화가 지망생이었다. 하지만 미술전문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것을 알게 됐다. 1학년을 마치고 학교를 그만둔 그는 건설현장 막노동 등을 전전하며 어렵게 살았다. 집안 사정이 너무 어려워 군대도 면제받았다.

현재 서울종합예술전문학교 패션예술학부 2학년에 재학 중인 김씨는 매 학기 등록금이 걱정이다. 첫 학기는 어머니 친구가 준 돈으로 메웠지만 두번째 학기부터는 한 학기 벌어 한 학기 다니는 식이다.

연예인 의상을 맞춰주는 스타일리스트가 꿈인 김씨의 특이한 이름은 가톨릭 성인 베네딕도의 한자 표기다. 김씨는 "성당에 다니는 어머니가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남을 위해 합당한 일을 하면 하느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라고 말한 게 현실이 된 것같다"고 말했다. "내가 성공하면 또 인터뷰하러 오라"는 김씨의 뒷모습이 매우 밝아 보였다

최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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