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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과 테러(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36년의 제11회 베를린 올림픽때 히틀러는 게르만족의 우수성을 세계 만방에 떨치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경기장 시설과 진행에 차질이 없도록 관계자들을 다그치는가 하면 선수들을 직접 독려하는 등 진두지휘에 나섰다. 그러나 성대한 개막식이 끝나고 처음 벌어진 육상경기에서 미국의 흑인선수 제시 오웬스가 한꺼번에 4개의 금메달을 획득하자 관람하고 있던 히틀러는 콧수염을 씰룩거리며 황급히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누구보다 인종을 차별하고 흑인을 경멸해오던 그로서는 참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올림픽에 정치성이 끼어드는 것은 물론 그 근본정신에 위배되지만,정치적 목적을 염두에 둔다면 인종의 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올림픽이야말로 가장 절호의 기회일 것이다. 그래서 정치성이 완전히 배제된 올림픽이 치러지기는 그리 쉽지 않다.
국제정치상의 흐름 때문에 행사 자체가 축소되거나 빛을 잃는 경우도 많았다. 소련의 헝가리 침공,아프가니스탄 침공과 때를 같이해 개최된 16회 멜버른올림픽과 22회 모스크바 올림픽은 여러나라들의 불참으로 「반쪽대회」로 치러질 수 밖에 없었고 21회 몬트리올 올림픽 때는 친중공 입장의 캐나다 정부가 미국에 도착해 있던 자유중국 선수단의 입국을 거부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그러나 정치적 영향보다 현실적으로 더 큰 두려움을 주는 것은 테러범들의 위협이다. 그들에게는 그나마의 국가적 명분이나 체면 따위도 있을리 없기 때문에 행위의 무모성이 커질대로 커질 수 있는 것이다. 72년의 제20회 뮌헨올림픽이 테러범들에 의해 야기된 올림픽 비극의 전형이었다. 그때 아랍게릴라들은 11명의 이스라엘 선수들을 납치했고,납치범과 인질들은 모두 사망했다.
88년 서울올림픽 때도 북한과 국제테러단의 테러위협이 있었으나 무사히 넘어갔는데,바르셀로나 올림픽 개막을 불과 10여일 앞두고 바스크족 극렬테러단체인 ETA(조국과 자유)가 협상을 전제로한 성명을 발표,「받아들이지 않으면 테러를 감행하겠다」는 뜻을 명백히 했다고 한다. 올림픽이 언제나 정치적 영향,테러의 위협으로부터 자유스러울 수 있을는지 아득하기만 하다.<정규웅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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