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포럼' 세미나 하러 남미 이과수 폭포 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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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기획예산처와 여행업계에 따르면 이들 공기업.공공기관 감사 21명은 이날 항공기 비즈니스석을 타고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한 것으로 확인됐다. 출장단은 칠레의 국민연금과 국영방송, 리우데자네이루시 항만국, 아르헨티나 수자원공사 등 네 곳을 방문하고 세계 3대 폭포 가운데 하나인 이과수 폭포에서 2박3일간 '이(異)문화'를 탐방한다. 이번 출장은'공기업.공공기관 감사포럼' 소속 80개 회원기관 중 34개 기관의 감사가 신청했다. 개인 사정 등으로 13명이 취소해 단체출장에는 21명이 참여했다.

◆ 남미 출장 논란=감사포럼 측은 "이번 출장이 공공기관 감사 업무를 혁신하기 위한 방안 마련에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출장지인 남미의 공공기관 민영화나 경영 투명성에 대해 배울 게 별로 없다는 지적이다. 구체적인 출장 내용도 애매하다. 열흘 동안 남미 3개국을 돌면서 현지 공공기관을 방문해 감사 업무 현황을 브리핑받는다. 단 한 차례 잡힌 자체 혁신 세미나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21일 오후 4시 43분에 도착해 심야에 열 수밖에 없도록 일정이 짜여 있다. 출장을 취소한 한 인사는 "일정을 보니 도무지 혁신 포럼이란 이름에 걸맞지 않아 안 가기로 했다"며 "공공기관 감사끼리 하는 자체 세미나를 남미까지 가서 연다면 누가 곱게 보겠느냐"고 반문했다.

◆ 기획예산처는 "모른다"=이번 출장을 주관한 감사포럼은 지난해 11월 기획예산처가 주선해 만든 모임이다. 공기업.공공기관의 방만 경영을 바로잡겠다며 제정한 공공기관운영법이 올 4월 1일자로 시행되는 데 맞춘 것이다. 각 부처에 흩어져 있던 공공기관 감독권을 예산처로 일원화하자면 공공기관의 감사 협의체가 필요했다. 현재 예산처의 관리를 받는 총 298개 공기업.공공기관 가운데 80개 기관이 감사포럼 회원으로 가입했다. 주요 공기업은 모두 포함됐다.

결국 공기업.공공기관 감사를 혁신하자는 감사포럼의 첫 행사가 남미 단체출장이 된 셈이다. 예산처 이용걸 공공혁신본부장은 "감사포럼을 만들 때만 관여했을 뿐 운영은 자율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감사포럼 주관으로 해외출장을 간다는 사실도 처음 듣는다"고 주장했다.

◆ 누가 참가했나=출장을 간 감사의 상당수는 정치권 출신이다. 지난 대통령선거 때 노무현 캠프에서 활약했거나 열린우리당에서 일한 사람들이 많다. 시민단체와 청와대 출신도 끼여 있다. 이번 출장은 정부 주도의 공공기관 혁신이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는 방증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경영 혁신에 앞장서야 할 감사들이 자체 공공기관 예산으로 묘한 해외출장을 가는 판에 제대로 경영감시를 하겠느냐는 것이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민간기업 감사들이 회사 돈으로 남미에서 포럼을 한다면 바로 징계에 부칠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정경민.윤창희 기자

◆ 공기업 감사=회사 서열 2위 자리로 대표이사로부터 독립돼 회사의 회계감사와 직무감찰을 한다. 공기업과 준 정부기관 감사는 예산처장관이 임명 또는 제청한다. 토지공사 감사는 2억5800만원, 조폐공사.예금보험공사 감사는 2억원의 연봉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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