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 아파트 살 때 해외서 '금맥' 찾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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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은 남보다 앞서서 해외펀드로 돈을 벌고 있었다. 주요 은행의 프라이빗뱅킹(PB) 팀장들이 전하는 강남 부자들의 ‘해외펀드 정복기’를 들어봤다.
 
가지 않은 길을 걷는다

부동산 임대업을 하는 이모(48)씨는 2년 전 20억원을 손에 쥐었다. 신도시 개발로 판교 땅이 수용되면서 보상금을 받았다. 문제는 투자처였다. 정부의 고강도 규제 때문에 부동산 프로였던 그도 아파트나 땅 투자의 승산을 점치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낮은 금리로 은행에 돈을 넣기는 망설여졌다. 국내 펀드에도 관심은 갔지만 당시 주가가 이미 크게 올라 휴식기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다 시선을 고정한 게 해외펀드였다. 해외펀드가 지금처럼 주력상품은 아니었기에 위험하다며 말리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그는 일단 15억원을 해외펀드에 묻었다. 결과는 황금알이었다. 이씨는 지금까지 45%의 수익률을 기록했고 6억원 넘는 차익을 거뒀다.

하나은행 압구정 PB센터의 정원기 부장은 “강남 부자들을 보면 남들이 몰리지 않는 곳을 찾아 투자하는 역발상 추구형이 많다”며 “다만 거액 자산을 곳곳으로 나눠 굴릴 수 있는 부자이기에 가능한 투자법”이라고 말했다.
 
사모님들은 투자 커뮤니티로

주부 박모(56)씨는 일에 바쁜 자영업자 남편을 대신해 자신이 직접 재테크를 한다. 그는 3~4년 전부터 주변의 강남 아줌마들과 모임을 만들어 투자정보를 수집한다. 박씨는 “자녀 교육문제로 만든 모임 못지않게 쏠쏠한 정보가 많다”며 “어떤 부자가 어디에 얼마를 투자했다는 소문이 귀신같이 퍼진다”고 했다.

부자들이 해외펀드에 몰리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귀동냥한 박씨는 지난해 여윳돈 10억원 중 해외펀드에 5억원을 투자했다. 그는 인도에 2억원, 중국 2억원, 일본에 1억원으로 분산투자했는데 일본 펀드에서 손실이 나는 통에 총 15%가량의 수익률을 올려 7500만원을 벌었다.

그러나 강남 아줌마 스타일의 투자자들은 귀가 얇은 나머지 오히려 기회를 놓치는 경우도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광업주 투자였다. 지난해 5월을 기점으로 꼭짓점이라는 소문이 파다하자 거들떠보지도 않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세계경제에 계속 군불이 지펴지면서 원자재 수요가 줄지 않아 최근 광업주펀드는 역외펀드 중에서 수익률 상위권에 대거 올라 있다.
 
워런 버핏이 따로 있나

섬유회사를 경영하는 김모(45) 사장은 평소 베트남 시장에 관심이 많았다. 국내 공장을 옮기는 문제로 중국과 베트남을 후보지로 두고 고민하면서 현지도 많이 방문했다. “특히 후진국으로만 치부한 베트남의 발전상에 내심 놀랐지요.” 김 사장은 공장을 옮기는 건 늦은 것 같아 증권투자라도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는 지난해 여름 베트남 펀드가 처음 출시됐을 때 득달같이 창구로 달려갔다. 김 사장은 지금까지 10억원 정도를 굴려 45%의 수익률을 올렸다. 우리은행 강남PB센터의 박승안 팀장은 “살아있는 현장 지식을 통해 잠재 가능성이 있는 시장을 잘 찾는 40~50대 부자들이 많다”며 “특히 해외 비즈니스를 하시는 사람들이 그렇다”고 했다. 워런 버핏이 코카콜라를 마시고 질레트 면도기를 사용하면서 해당 기업의 가치를 인정해 투자한 것처럼 비즈니스를 통해 DIY(Do It Yourself)로 닦은 투자감각이 해외펀드에서 성공을 이끌었다는 얘기다.

2004년 일본 펀드에 1억원을 투자한 대기업 임원 최모(54)씨도 비슷하다. 확정금리 상품만 고집하던 그는 일본 여행을 갔다 온 뒤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비난받던 일본 경제가 회복 조짐을 보인다는 감을 잡고 일본 투자 상품을 찾았다. 그는 6개월만에 40%의 수익을 올린 뒤 환매했다.

나만의 금고지기를 활용한다

최모(68) 사장은 금융자산만 200억원이 넘는 큰손이다. 그는 거래하는 은행이나 예금상품 하나를 고를 때도 여러 번 저울질할 정도로 까다롭고 보수적인 입맛을 가졌다.
최 사장은 수년 전 여러 명의 PB를 찾아가 10억원씩 주고 자유롭게 운용토록 했다. 그리고 돈을 가장 잘 관리하고 애프터서비스가 충실한 곳을 주거래 은행으로 삼았다.
상품 파는 데에만 급급한 곳은 가차없이 후보에서 뺐다. 말하자면 면접을 거쳐 ‘금고지기’를 선정한 셈이었다. 해외펀드에 가입한 것도 PB가 제공한 정보를 믿었기 때문이다.

저금리로 국내에 투자할 곳이 없고 부동산 시장은 위축될 것이어서 눈 돌릴 곳은 고속 성장하는 신흥시장밖에 없다는 말에 금고를 열었다. 그리고 최 사장은 지난해 30억원을 해외펀드에 넣었다. 중국 8억원, 일본 리츠펀드 5억원, 브릭스 5억원, 동유럽 5억원, 글로벌 7억원 등에 투자해 지금까지 33%의 수익률을 올렸다.

최 사장 사례는 요란한 입발림 대신 요긴한 정보를 적시에 귀띔해줄 수 있는 조언자를 구하는 게 그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 조언자는 PB뿐만이 아니라 신문기사나 책이 될 수도 있다.  

최중혁.김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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