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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주 조직' 거침없는 질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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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 '칼받이' '뒷받이' 등 조직적 행동=적발된 인터넷 동호회는 서울.인천.경기 지역에서 활동하는 19곳이다. 회원수 12만4000여 명에 이른다.

경찰 조사 결과 동호회 대표들은 인터넷이나 휴대전화 메시지 등을 통해 수시로 연락하며 서울 도심 폭주를 기획해왔다. 특히 3월 1일 오전 1시부터 5시까지 오토바이와 승용차 등 300여 대로 서울 도심 교통을 마비시킨 '3.1절 기념 태극기 폭주' 역시 동호회들이 사전에 준비한 '작품'이라고 경찰은 설명했다. 이들은 과거와 달리 '리더' '칼받이' 등 역할 분담을 통해 폭주 대열을 경찰 단속으로부터 유지.보호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선두를 이끄는 리더는 양손에 든 번쩍이는 경광등으로 대열을 지도한다.'칼받이(앞커버)'라고 불리는 이들은 대열 좌우에서 일반 차량을 막는 역할을 한다.

앰뷸런스나 견인차도 동원한다. 견인차를 몰고 폭주에 참여했던 오모(24.구속)씨는 "경광등이 달린 차를 동원하면 일반 차량들이 길을 쉽게 터준다"고 털어놨다. 대열 후미엔 준베테랑급인 폭주 경력 3~5년차의 '뒤커버'가 버틴다. 이들은 '각기(지그재그 주행)' 등 곡예를 벌여 뒤쫓는 순찰차를 막는다. 선발대인 '옵저버'는 진행 코스에 미리 도착, 경찰이 있는지 여부를 리더에게 알린다.

◆ "심심하면 112 신고"=폭주 동호회들은 자신들의 행동수칙까지 만들어 회원들에게 유포했다. 행동수칙은 ▶경찰이 추적해도 흩어지지 않는다 ▶경찰 순찰차가 오면 더 천천히 간다 등 경찰 단속에 대한 지침이 들어 있다. 구속된 차모(24)씨는 "경찰 순찰차가 나타나면 이동속도를 시속 30~40㎞ 수준으로 갑자기 줄인다"며 "겁먹은 회원들이 혼자 달아나다 체포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심심할 땐 112 신고를 하라' '경찰이 오면 다른 관할지역으로 옮겨가라'는 지침도 있다. 수사 관계자들은 "이들은 단속 경찰관이 붙어야 오히려 재미를 느낀다"며 "폭주족의 부상 가능성을 우려해 적극 대응하지 못하는 경찰의 입장을 악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3.1절과 광복절 등 '대폭'(큰 폭주)을 앞두고 동호회 운영자들은 회원들에게 태극기와 소화기.예비 키를 지참하도록 안내하기도 한다. 경찰에 따르면 소화기는 경찰차의 유리창에 소화분말을 뿌려 도주할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이다. 예비 키는 일단 오토바이를 두고 도망갔다 다시 폭주에 참가하기 위해 준비한다고 한다.

경찰에 따르면 사법처리된 214명 중 60%는 10대 청소년이었다. 이 중 절반 이상이 청소년 무면허 등 관련 전과가 3건 이상 있었다.

청소년들은 폭주의 매력을 '마약'에 비유하곤 했다. 폭주족 카페 회원 박모(18.여)씨는 지난해 12월 트럭에 부딪혀 3일 동안 병원에 입원했으나 퇴원 뒤 바로 폭주에 나섰다 이번에 또 불구속 입건됐다. 박 양은 "우리들끼리는 '폭주가 술.담배보다 끊기 어렵다'고 말한다"고 털어놨다.

천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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