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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빌딩 팔아도 직원은 안 자른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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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호 18면

중앙포토

나이지리아 무장단체에 납치됐다 구사일생으로 풀려난 대우건설 임원 3명이 11일 오전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지난해 대우건설을 인수한 박삼구(62) 회장은 2시간 뒤 이들을 만났다. 일행이 접견실로 들어서자 박 회장은 달려가듯 손을 잡고 어깨를 감쌌다.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 “무얼 먹고 지냈느냐”며 마치 전장에 나갔다 살아 돌아온 친동생을 맞듯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FOCUS ‘대우건설 피랍 직원’ 껴안은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

기대 이상의 환대를 받은 정태영 상무는 되레 “2차 피랍 때까지 대책을 마련했던 제가 피랍돼 걱정을 끼쳐 드렸다”며 “임원으로서 면목이 없다”고 말했을 정도다. 그러자 박 회장은 손사래를 치며 “액땜 했다 생각하자. 사지에서 살아왔으니 분명 오래 살 것이다”고 위로했다. 정말 ‘오래 살기를 바란다’는 뜻을 전하려는 듯 3명의 임원에게 손수 준비해둔 ‘몽블랑’ 만년필을 선물로 건넸다.

지난 1월 2차 피랍 때도 같은 장면이 연출됐다. 그때도 박 회장은 무사 귀환한 9명의 대우건설 직원은 물론 가족까지 접견실로 불러 환대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들이 납치된 3일 내내 박 회장은 대우건설 상황실로 출근해 해결사로 나섰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직원의 생명을 지키라”고 호령했다. 상황이 긴박해지자 그는 “어떤 요구조건이라도 감수할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이번 3차 피랍 때도 그는 대책반에 “나이지리아 사업이 대우건설 해외사업의 70%에 달한다고 해도 직원의 생명보다 중요하지는 않다”며 “어떤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재발을 근본적으로 막으라”고 지시했다. 회사 측은 이번에는 임원급이라 회장이 직접 환대하지는 않을 것이라 했지만 그는 예상을 깼다. 박 회장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노력을 한다.

박 회장의 대우건설 끌어안기는 2005년 인수전 때부터 시작됐다. “우리는 대우건설을 사려는 것이 아니라 인재를 사고 싶다.” 박 회장의 이 한마디는 인수 후폭풍을 우려했던 대우건설 사람들을 안심시키기에 충분했다. 인수 후에도 그는 아직까지 이렇다 할 인력 구조조정을 한 적이 없다. 지난 연말 인사 때도 그룹에서 대우건설로 내려보낸 사람은 김안석 부사장 1명뿐이다. 그룹 내에서 “그래도 그게 아니지 않으냐”는 의견이 나오자 박 회장은 “인수 전 혼자서도 1등 하던 대우건설이다. 여러 사람 내려보낼 필요가 있는가. 괜히 간섭하려 들지 말고 뭐 하나라도 지원해줄 게 없나 그런 것이나 고민하라”고 일축했다. 박 회장은 금호건설과 대우건설의 ‘페어 플레이’를 의식적으로 강조한다. 대우건설 직원들이 혹시라도 피해의식에 빠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해서다. 지난 연말에는 “실적이 좋다”며 대우건설 전 직원에게 200%의 보너스를 지급하고 54명을 승진시켰다.

박 회장은 무엇보다 자신이 대우건설 회장으로서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직원들과 스킨십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친정이나 다름없는 아시아나항공보다 대우건설 회장실로 출근할 때가 더 많다. 지난해 종무식 때는 대우빌딩 7개 층 전 사업부서를 돌며 일일이 악수를 청했다. 당시 한 내성적인 말단사원이 회장을 보고 몸을 숨기자 기어이 손을 잡아끌더니 “함께 웃자”고 했다. 사원이 고개를 못 들고 억지웃음을 짓자 박 회장은 “이가 하얗게 보이도록 웃어야 진짜 웃는 거야”라면서 주위를 둘러보며 파안대소했다.

얼마 전에는 대우건설 상무가 모친상을 당했는데 장례식장으로 박 회장 명의의 화환이 도착했다. 모두 ‘비서실에서 알아서 보냈으려니’ 하고 있는데 불현듯 박 회장이 문상을 온 것이다. 상주가 감복했음은 물론이다. 대우건설 ‘호프데이’가 열리던 3월에도 박 회장은 기별 없이 나타났다. 통상 사장 주재로 열리는 회식 자리에 회장이 출현한 것 자체가 파격이었다. 직접 ‘폭탄주’까지 제조해 돌리면서 파장 때까지 자리를 지킨 그는 “하반기 호프데이 때도 날 부르지 않으면 책임자를 문책하겠다”며 작별인사를 했다.

3월 중순 박 회장은 자청해 두바이ㆍ카타르ㆍ도하 등 대우건설의 중동 현장을 돌며 직원들을 만나고 다녔다. 금호의 한 임원은 “건설 자회사(금호건설)가 없는 것도 아닌데 박 회장이 헬멧(안전모)을 쓴 것은 그때가 난생 처음이었다”고 전했다.

올 초 신입사원 연수에 대우건설 신입사원 110여 명을 함께 참여하도록 지시한 사람도 박 회장이다. 연수기간 중 박 회장은 신입사원들을 이끌고 경기도 광주의 태화산에 올랐다. 처음부터 ‘하나’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회장이 직접 나선 것. 산행 중 폭설이 내리자 그는 “여러분에게 서설(瑞雪ㆍ상서로운 눈)을 내려주신다”며 산행을 지속했다. 박 회장의 대우건설에 대한 애정은 훨씬 오래됐다. 아시아나항공 사장 시절부터 그는 대우건설에 관심이 많았다. 한 인사는 “박 회장은 ‘대우그룹 계열사 중 인재가 가장 많은 곳이 대우건설’이라고 말하곤 했다”고 전했다.

그토록 원하던 대우건설 인수로 박 회장도, 그룹도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대우건설은 그룹 내 최대 계열사가 됐으며 덕분에 금호아시아나는 명실상부한 10대 그룹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박 회장은 결혼식보다 신혼생활이 더 중요함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어야 비로소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아시아나항공 시절부터 쌓아온 그의 스킨십 경영 노하우가 대우건설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다.

최근 대우건설이 사옥(대우빌딩)을 매각하기로 한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기도 한다. 박 회장이 “2008년까지 매각하지 않겠다”고 한 약속을 스스로 어겼다는 것이다. 주가관리 차원에서도 박 회장은 자금이 필요하다. 사재를 출연하지 않고 재원을 마련하려면 건물을 팔거나 인력을 줄여야 한다. 박 회장은 건물을 포기했다. 수익이 안 나는 자산을 보전하기 위해 무한 능력을 발휘할 인재를 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은 것이다. 그가 잠시 약속을 어겼을지는 몰라도 ‘사람이 우선’이라는 원칙을 깨지는 않았다.

박 회장은 사돈지간인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이 쓰던 집무실을 개조해 사용하고 있다. 박 회장의 형인 고 박정구 회장 장녀와 김 전 회장의 차남이 결혼했다. 박 회장은 대우 패망의 근본 원인이 무리한 사업확장에 있었음을 잘 알고 있다. 누구보다 그 위험성을 경계하는 그 역시 “너무 비싼 값에 대우건설을 인수했다”는 지적을 끊임없이 받고 있다. 정(情) 때문인지 인수 후 금호건설과 합병도 없었다. 아직까지는 괜찮다. 박 회장은 ‘화이트데이’에 수천 명의 승무원ㆍ캐디에게 초콜릿과 사탕을 나눠줄 만큼 잔정 많은 총수다. 대우건설 직원에게도 마찬가지다. 일단 마음은 사로잡은 것 같다. 그러나 단맛만으로 거대한 기업을 언제까지나 움직일 수는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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