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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약­공약(3자탐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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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부지사­부시장 모두 여성으로” YS/“전국구의원 33% 여성에 할애” DJ/“8개월만 견디면 잘살게 된다” CY/약속내용에 노 대통령도 “갸우뚱” 김영삼/메뉴 다양… 실현성없는 것 수두룩 김대중/“아파트 반값”… 총선 끝나자 꽁무니 정주영
대통령후보의 선거공약은 집권이후의 국정실천계획이다. 별도의 자금이 거의 필요없는 정치제도개혁같은 공약도 있지만 대개의 공약은 국가재정의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때문에 공약은 면밀한 검토와 완급을 가린 바탕에서 국민에게 제시되어야 한다. 더군다나 전망이 불투명하고 경제난이 심각한 때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요즘 대통령후보 3인이 쏟아놓는 공약성상품을 보면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3자는 집권만 하면 무소불위의 슈퍼맨이 될듯 민원해결사인양 번지르르한 공약들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공약을 뜯어보면 알맹이가 부실하거나 허황한 것이 수두룩하다. 사실 우리경제가 이 모양이 된데는 87년 대통령선거때 노태우후보가 힘에 부치거나 감당못할 많은 공약을 풀어놓고 그것을 무리하게 추진한 것이 큰원인이었다는 비판론이 있다.
이번의 3자 역시 실천가능성보다 인기영합적이거나 즉흥적인 공약을 남발하는 경향이 있다.
대표적 사례들을 짚어보자. 김영삼민자당후보는 6월26일 여성단체협의회에서 전국의 부지사·부시장을 여성으로 임명하겠다고 공언했다.이에 앞서 김대중민주당후보도 6월15일 같은 단체의 연설에서 국회 및 지방의회선거에 일정수(전국구의원 3분의 1)의 공천,국무위원에 3∼4명의 여성을 의무적으로 할당하겠다고 약속했다.
두 김씨의 이같은 공약은 일부 여성들의 귀를 솔깃하게 할지 모르지만 법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실천되기엔 어려움이 많다. 김영삼씨는 부지사·부시장을 관료조직의 장식품쯤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여당안대로 단체장선거를 95년에 실시한다 해도 부지사·부시장은 실질적인 행정조직의 정점이 되는 전문직의 자리가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공약은 터무니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 대통령이 김 후보의 이 공약에 즉각 우려를 표명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부지사·부시장을 맡아 직무수행에 문제가 없을 능력과 자격을 갖춘 여성인력이 줄을 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닐진데 이 문제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김대중후보 역시 각료 3∼4명을,전국구의원 3분의 1을 여성으로 채우겠다는 공약은 논리상에는 별 문제가 없더라도 실현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진정으로 그런 생각이 있었다면 지난 총선에 조금이라도 성의를 보였어야 했다. 여성문제는 공천헌금 챙기기의 뒷전에 밀리지 않았던가. 많아야 1백여명,적게는 20∼30명 내외의 지방의회에 비례대표제를 도입해 그중 몇%를 여성에게 할애한다는 말을 믿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대통령후보들이 『당선만 보장된다면 비상도 먹겠다는 걸 마다않을 사람들』이라는 비아냥이 나온다.
3자가 경제회생을 최우선과제로 다짐하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 현상이다.
정권만 바뀌면 경제난이 타개될 것 같은 메시지를 보내고 있지만 어떤 방식으로 타개할지에 대해선 유구무언이다.
실물경제의 달인을 자처하는 정주영국민당후보는 요즘 부지런히 시장바닥을 돌며 『넉넉잡아 8개월만 견디면 잘 살 것』이라고 구세적 메시지만 전파한다. 자신이 어떤 정책으로 8개월후 잘 살 수 있도록 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김영삼후보는 『2년내 국제수지를 흑자로 반전시키겠다』며 『2년내 물가인상을 연3%선에서 안정시키겠다』고 큰소리쳤다.
김대중후보도 『1년내 물가인상 3%선에서 억제하겠다』며 『임기중 우리경제를 세계경제 8강대열에 올려놓겠다』고 호언했다. 정 후보는 『집권후 국제수지를 1백억달러 규모의 흑자로 반전시키겠다』고 장담했다.
3자의 그림이 거의 비슷한데 그에 따른 실천적이고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지 않은 것도 어쩌면 그렇게 같은지 모른다.
그들은 한결같이 작은 정부와 긴축예산편성을 외치면서도 돈이 뭉텅뭉텅 들어갈 사업이나 지원,기구신설 등을 각종 사회·이익단체와의 면담에서 약속하고 있다.
김영삼후보는 「대통령각하」라는 소리가 나왔다해서 구설수에 오른 택시업계 대표들과 만난 자리(6월10일)에서 고급택시도입 건의를 받고 즉석에서 긍정검토를 약속했다.
그는 앞으로 범여권과 개혁지향 세력을 한묶음으로 묶는 과정에서 모순되는 공약을 적지 않게 내놓을 것이다.
김대중 민주후보의 공약은 다양하다. 그는 71년 박정희대통령과의 대결당시 정책개발로 기세를 올린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에도 공약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는 『집권하면 1년내에 물가안정·노사관계안정·지역감정해소·부정부패일소 등을 이룩하겠다』(6월15일)고 말했다.
그러나 깊게 골이 팬 지역감정을 지방인구비례에 의한 장관임명과 공무원인사로 해소할 수 있을지,대통령이 재산공개를 하는 등 솔선수범한다고 해서 구조적 부정부패를 단시일내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따져볼 일이다.
특히 공무원인사를 인구비례로 한다는 것은 특정지역의 편중인사에 못지않게 자의적이며 작위적이어서 새 폐단이 안 생기란 법이 없다.
지난 총선에서 공약으로 크게 재미본 쪽은 정주영후보였다. 그는 「아파트 반값 인하」상품을 내놓아 대히트를 쳤다.
당시 유권자들은 이것저것 따져보지도 않고 그 「상품」을 사들여 정 후보는 짧은 기간내 최대 매출신장을 기록,오늘의 국민당을 만든 기반을 일구어냈다.
그러나 지금와서 그는 『아파트 반값 공급은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획기적 발상이었다. 그러나 창당한지 40여일만에 선거를 치러 준비가 모자랐던게 사실』이라며 실천가능성에 꽁무니를 빼고 있다.
기업가인 정 후보는 잘팔릴 단기성 공약상품이 무엇인가만을 궁리했지 「아프터서비스」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예컨대 소유집중의 완화정책을 내놓은 정 후보가 요즘 『상속 및 증여세에 관한한 우리 수준은 선진국수준이어서 이를 더 높이면 열심해 일해 재산을 자손에 남기겠다는 의욕이 상실된다』고 했다.
그는 또 『집권하면 서해안 간척지를 개발해 주택·공업용지를 확보,땅값을 낮추겠다』고 했다. 그렇지만 현대 서산간척지의 공공이용문제에 대해 『그것은 바다에서 내가 건진 땅』이라고 일축해 공약의 과포장 시비를 일으켰다.
재벌총수인 정 후보는 재벌해체론을 거론해 비상한 관심을 끌었으나 『현대부터 할 용의가 없느냐』는 질문에는 묵묵부답이었다.
정 후보는 지난 총선때 강원 동해시에서 울산대 분교유치,현대자동차 부품공장 건설,리바트가구(현대계열) 공장유치 등 세가지를 한꺼번에 공약하는 등 전국 곳곳에 무공해공장건설을 공약했으나 지금껏 계획이나마 세우고 있다는 곳이 한곳도 없다.
김영삼후보는 민자당으로 변신해서 『야당이 집권하면 나라가 불행해진다는 것은 내가 야당을 했기 때문에 잘안다』고 말해 자신의 87년공약이 전적으로 형편없는 것이었음을 스스로 시인한 바 있다.
김대중후보는 87년선거때 『내가 당선되면 농가부채를 안갚아도 되는데,내가 여러분이라도 김대중이 당선될 때까지 빚을 갚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정주영후보는 공산당허용 발언 등으로 말을 막했다는 비판이 나오는데다 총선때의 공장건설공약이 지켜지지 않아 오는 대선때는 신문광고를 어떻게 낼지 궁금하다.<박보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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