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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 제비뽑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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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진국
김진국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대통령을 로또처럼 추첨하면 어떻게 될까. 실제로 대통령 후보를 제비뽑기로 결정하려 한 적이 있다. 5.16쿠데타 후 첫 대통령 선거(1963년)에서다. 야권은 박정희 후보에 대항할 단일 후보를 내세우기로 했다. 민정당의 윤보선과 비민정계의 허정이 거론됐다.

후보를 차지한 쪽은 총리.국회의장.당직까지 양보하기로 했다. 그런데도 서로 양보하지 않았다. 끝내 타결이 안 되자 후보 조정 12인 위원 중 한 사람이 "제비뽑기밖에 달리 방법이 없겠다"고 제안했다. 허정 측이 당첨됐다. 하지만 윤보선은 사퇴를 거절했다.

그런 상태로 통합야당인 국민의 당 전당대회가 열렸다. 대의원 수에서 우세한 윤보선계는 무기명 투표를 제안했다. 허정계는 긴 연설로 의사진행을 방해했다. 단상은 청년당원들의 난장판이 됐다. 다음날 속개된 대회에서도 난투극이 이어졌다.(이영석, '야당 40년사')

후보 단일화는 실패했다. 야당 후보가 난립했다. 다행히 청중 수와 반응이 윤보선에게 크게 못 미친 허정은 지방 유세를 한 번 하고는 바로 사퇴했다. 그런데도 함께 나섰던 다른 야당 후보들(오재영.변영태.장이석)이 81만1944표를 얻어 갔다. 윤보선은 그보다 훨씬 적은 15만6026표 차이로 박정희 시대를 열어 줬다. 대통령 선거 사상 최소 표차다. 단일화 실패가 뼈에 사무칠 수밖에 없었다.

한나라당에서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가 경선 규칙으로 다툰다. 이 전 시장은 "시대를 따라야 한다"고 한다. 박 전 대표는 "고스톱 치다가 규칙을 바꿀 수 있느냐"며 경선 포기까지 거론하고 있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도 경선 규칙을 이유로 당을 떠났다.

이런 싸움은 다 이겼다 싶을 때 벌어진다. 대통령 자리가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이긴 후보는 없다. 87년 6월항쟁의 뜨거운 열기를 보고 김영삼(YS).김대중(DJ)씨는 갖은 구실로 단일화를 외면했다. 심지어 DJ는 영남표를 분열시키는 동시 출마가 더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서울의 봄'이 왔다고 착각한 80년도 마찬가지다. DJ는 YS에게 함께 출마해 여당과 야당을 하자고 했다.

대개 문제는 시비를 거는 쪽이다. 97년 신한국당 경선에서 지고도 출마를 강행한 이인제 후보처럼 약속을 뒤집는 사람이다. 더 큰 문제는 보복을 겁내고 자리를 구걸해 눈치만 보는 의원들이다. 국가적 지도자를 자처하는 사람들도 로또를 사는 범부들의 욕심과 별로 다를 바 없는 모양이다.

김진국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