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朴 경선불참 시사는 고도의 노림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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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선을 혼자 하나. 결국 이명박 전 시장이 양보하게 될 것이다. 박근혜 전 대표는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은 10일 오후 기자와 만나 이날 오전에 나온 박 전 대표의 '경선 불참' 시사 발언을 이렇게 평가했다. 홍 의원은 한나라당 내홍의 불씨가 된 현행 경선 규정을 만든 당사자다. 그는 2005년 당 혁신위원회를 이끌면서 양대 주자 진영 및 지도부를 대표하는 의원들과 함께 '2:3:3:2' 경선안을 도출했다.

이날 오후 국회 기자회견 뒤 만난 홍 의원은 "박 전 대표가 현 상황을 최대 고비로 보고 있을 것"이라며 "불참 시사는 실제로 경선 불참이나 탈당을 염두에 둔 발언이 아니라 이 전 시장을 압박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읽었다. 이 전 시장의 양보를 끌어내기 위한 고도의 노림수라는 얘기다.

그는 일각에서 제기하는 분당설에 대해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박 전 대표는 2002년 탈당 전력이 있고, 이 전 시장은 나가는 순간 왜소해질 것"이라는 게 이유다.

박 전 대표는 2002년 대선을 앞두고 탈당해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했다.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에게 요구했던 집단지도체제 등 개혁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내린 결론이다. 현 상황에서 박 전 대표가 재탈당의 길을 택한다면 보수층을 중심으로 한 정통 지지기반이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 개인적 성취를 위해 당을 두 번 버렸다는 비난도 피해가기 어렵다. 박 전 대표가 섣불리 움직일 수 없을 것으로 보는 근거다. 박 전 대표 측도 "당을 떠날 가능성은 1억만 분의 1 만큼도 상정해 본 적이 없다"며 탈당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다.

홍 의원은 이 전 시장 역시 운신의 폭이 넓지 않다고 보았다. "손 전 지사가 나갈 때 했던 '시베리아'발언 그대로"라며 "섣불리 움직일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 전 시장은 손 전 지사가 탈당하기 직전 그를 향해 "안에 있어도 춥고 밖에 나가도 시베리아일 것"이라고 말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홍 의원은 "이 전 시장이 탈당한다면 당 소속 의원 절반은 따라나가야 분당"이라며 "아마 손 전 지사의 탈당 때와 마찬가지로 국회의원 한 명도 안 따라나갈 것"이라고 했다.

홍 의원은 "결국 경선안을 둘러싼 두 대선주자 간 마찰은 이 전 시장이 한 발짝 물러서면서 머잖아 해소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 전 대표의 경선 불참 카드가 이 전 시장에게 상당한 정치적 부담이 되는 만큼 양보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게 홍 의원의 판단이다.

그는 "강재섭 대표가 내놓은 경선 중재안은 원칙에 어긋나 옳지 않다"며 "중재안이면 양 진영과 중진들의 의견을 종합해야 옳은데 강 대표의 안은 중립성과 객관성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고 말했다. 이어 "친소관계를 따지자면 나와 이 전 시장이 훨씬 가깝지만, 그쪽 주장이 과하다는 느낌"이라며 "이 전 시장은 큰 길로 가라"고 말했다.

박연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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