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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축소한 세계지도 왜 만드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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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건설교통부 산하 국토지리정보원이 교육용 세계지도를 30만 부 제작하는 사업을 추진한다. 총예산이 2억3000만원 남짓 되니 한 장에 800원이 조금 못 되는 값싼 세계지도를 만들어 전국의 각급 학교에 보급한다는 것이다. 1차 입찰에 1개 업체만이 참가해 유찰됐고, 5월 4일 재입찰 공고가 있었다.

국토지리정보원이 밝힌 사업의 목표는 첫째로 교육기관에 세계지도를 배포해 자라나는 세대에 바른 역사관 정립을 위한 자료로 활용하고, 둘째로 독도와 동해가 바르게 표기된 세계지도를 통해 올바른 국가관을 정립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셋째로 세계지리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시각적 자료를 제공하고, 넷째로 우리가 사는 지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정확한 세계지도를 국가공인기관이 제작해 각급 학교에 무료로 공급한다고 하니 훌륭한 사업처럼 보일 수 있지만 몇 가지 우려되는 바가 있어 이를 지적하려 한다. 3차원의 지구 표면을 2차원의 평면 위에 펼치는 기술을 지도투영법이라 하며, 어떠한 투영법을 사용하더라도 면적.거리.방향.방위 모두를 만족시키는 지도를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것이 지도학의 상식이다. 기원전부터 프톨레마이오스를 비롯해 여러 학자에 의해 다양한 지도투영법이 고안됐으며, 현재까지 제시된 지도투영법은 수백 가지에 이른다.

국토지리정보원에서 만들려는 세계지도의 투영법은 메르카토르 투영법이다. 이는 네덜란드 지도학자 메르카토르가 1569년에 고안한 투영법으로, 당시 신대륙의 발견과 대항해 시대의 요구에 맞게 만든 항해용 세계지도다.

하지만 이 투영법을 사용한 지도는 면적.거리.방위가 지나치게 왜곡되는 치명적 결함을 갖고 있다. 한반도 북쪽의 중국이나 러시아의 면적 확대는 말할 것도 없고 한반도 면적의 단지 1.1배에 지나지 않는 영국이나 루마니아가 이 지도에서는 각각 1.9배, 1.4배로 나타나며, 한반도 면적보다 작은 벨로루시마저 1.8배로 표현되고, 한반도 면적의 절반이 되지 않는 아이슬란드가 1.6배로 표현된다. 이처럼 고위도로 갈수록 면적이 확대되는 메르카토르 투영법을 굳이 사용해 우리 주변국들이나 우리의 경쟁 상대인 유럽 국가들보다 우리나라를 상대적으로 작게 표현할 이유가 없다. 20세기 초 서구에서도 메르카토르 투영법과 같은 장방형의 투영법으로 된 벽걸이용 세계지도 사용을 자제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났고, 그 결과 현재는 벽걸이 지도뿐 아니라 아틀라스에서마저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다.

새로 제작하겠다는 교육용 세계지도는 2006년에 이미 제작된 세계지도의 축소판임을 국토지리정보원은 밝히고 있다. 하지만 2006년 세계지도에도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우선 한반도를 지도의 중앙에 놓아야겠다는 중압감에 러시아보다 조금 작은 남극대륙을 일부 흔적만 남겨 놓았고 북극해를 과대하게 표현해 북반구에 비해 남반구를 지나치게 축소시켜 놓았다. 한편 이 지도에서는 서울 혹은 부산 기점의 항로 혹은 운항 거리를 표시하기보다는 요코하마 기점 거리를 표시해 놓았다. 이는 우리 스스로 이 지도를 만들지 않았고, 일본의 지도를 모사한 것임을 암시하는 것으로 향후 저작권 문제까지 발생할 소지가 있다.

왜 이러한 지도를 국가가 나서서 보급하려 하는지 그 당위성을 찾을 수 없다. 국토지리정보원이 지리교육을 위해 무언가 봉사하고 싶다면 무료로 자체 제작한 지도를 다양한 매체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주면 된다. 그래도 부족하다고 생각되면 지구의 형상과 지리 정보를 동시에 이해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도구인, 제대로 만든 대형 지구본을 각급 학교의 교실로 보급하는 운동을 하면 어떨까?

손 일 부산대 교수·지리교육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