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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선 필름과 동양화 그 기이한 만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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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폐기된 X선 필름을 화면으로, 금속성 스테이플을 붓으로 삼는다. 라이트 조명이나 비디오 카메라의 영상을 채색의 도구로 쓴다. 서울 인사동 학고재에서 열리고 있는 한기창(41)초대전의 특징이다. 작가는 독특한 기법을 통해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공간을 만들기도 하고 상처와 치유의 이미지를 결합해서 전달한다. 전시 제목도 그래서 '혼성의 풍경'이다.

그는 X선 필름을 검은색 라인테이프로 덮은 후 칼로 테이프를 오려내서 민화와 도시풍경과 인물을 만들어낸다. 뒷면에서 빛을 받은 풍경은 강렬하고도 복합적이다. 그속에는 섬뜩하면서도 기이한 아름다움이 있다.

상처를 봉합하는 의료용 스테이플러를 목판 위에 찍은 '일필사의도'도 재미있다. 스테이플들은 산의 형상을 드로잉처럼 보여준다. 그 위로는 나비가 날아가는 비디오 영상이 비친다. 장자의 나비가 몽유도원도처럼 꿈속에서 본 산을 날고 있다고 할까. 검은 칠을 한 목판을 칼로 깎아내서 풀숲을 나타낸 '검은 풍경'같은 작품도 있다.

의료 용품이 많이 등장하는 건 작가의 입원 체험 때문이다. 1993년 교통사고를 당해 1년여간 입원해야 했다. 동양화를 전공한 그는 자신을 촬영한 X선 필름에서 먹의 농담을 느끼게 됐다고 한다.

한씨는 "고통과 치유의 이미지를 전달하고자 했다"면서 "예술은 평범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올해 국립현대미술관의 창작스튜디오 대표작가전을 비롯, 2003년 삼성미술관 아트스펙트럼, 2004년 금호미술관 15주년 기념전 등의 굵직한 단체전에 참여했다. 22일까지, 02-739-4937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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