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코민과 단체장선거(권영빈칼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국민건강을 지켜야 할 약품속에 유해물질이 들어있다고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징코민 사건의 수사결과도 흐지부지 끝났다. 풀뿌리민주주의의 핵심이라할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실시의 법정기일이 지나갔건만 국정의 책임을 맡고 있는 대통령의 해명 한마디없이 그냥 넘어가고 있고 때늦은 홍보전만 벌이고 있다.
○판정없이 흐지부지
무엇이 옳고 그른지,어떻게 해야 합법이고 비합법인지,매사가 뒤범벅이고 만사가 엉망진창이라는 느낌밖에 들지 않는다.
건강을 해치는 메탄올이 함유되었다면 함유량이 얼마니 먹어서는 안되고 징코민뿐만 아니라 유사제품인 기넥신도 현재의 제약방식으로는 제조 판매를 금지하든지,또는 지극히 미량이니 인체에 아무런 해가 되지 않는다는 명확한 판정이 났어야 옳았다.
명확한 판정은 커녕 함유량 검사방식부터 검사기관에 따라 결과가 엇갈려 발표되다가 급기야는 제약회사와 보사부관리간의 유착으로까지 비화하더니 조사결과는 그 어느 것도 소상히 밝혀주지 못한채 끝내버렸다.
20년동안 29차례 선거가 있고,한해 4차례 선거를 치르는 선거망국풍토는 지자제실시와 더불어 이미 당초부터 예상되고 제기된 문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차례의 연기를 거쳐 6월말로 시한을 정했다면 법대로 실시하든지,실시못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면 13대 국회에서 법을 개정해 내년 또는 95년으로 연기했어야 마땅했다.
그런데 법정시한을 넘기고서도 법을 어긴 게 아니라는 발뺌만 하고 있다. 발뺌만 하는게 아니라 내무부 이름의 「한해 네번 선거로 나라를 휘청거리게 해서는 안된다」는 때늦은 엄포식 광고를 연일 내고 있다. 적어도 13대국회가 끝나기전에 했어야 할 일을 기차가 떠나고 행차가 끝난 다음에 「손들고 나발부는」꼴이다.
단체장선거를 연기해야 한다는 논의는 지난해 말부터 언론이 수없이 제기함으로써 연기론의 타당성이 인정되는 분위기였고 여론조사결과도 대부분 연기론이 우세한 쪽으로 나타났다.
○차떠난뒤 손흔든 꼴
여론이 이런 방향이었다면 정부·여당은 13대 국회가 끝나기 전에 연기의 당위성과 대책을 제시하고 법개정을 서둘렀어야 했다. 그런데도 정부·여당은 총선에 정신이 팔려 이를 방치하다가 법정시한을 넘기고서야 연기의 당위성 홍보를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으니 도대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징코민 사건수사와 단체장선거 실시여부를 이처럼 흐리멍텅한 용두사미로 끝내버리면 국민의 건강을 정치적 이유로 희석시켰다는 비난이 나올 수 있고,단체장선거 연기의 타당성을 정부·여당의 무능과 나태로 오히려 입지를 좁게 하고 불법화시켰다는 지적을 면할 수가 없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지난해 기초·광역의회 선거를 치르고 난 다음부터 경제가 이꼴인데 「바보들의 행진」같은 선거전에 국민들이 넋을 놓고 일손을 놓으며 흥청망청의 금권선거에 놀아나야 하느냐고 우려하고 개탄했었다. 이런 여론을 국민적 공감대로 수용하고 확산시켜 법개정쪽으로 나가는 것이 정치력이고 행정력일 것이다.
지자제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고 연기하자는 것이며 이미 3차례나 연기를 한 정치적 타협의 입법이었다면 한번더 연기해서 문제의 소지를 없애고 지자제의 기초를 처음부터 잘 다지는 계기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많은 사람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성숙된 분위기를 법개정으로 옮기지도 못하고 법정시일을 놓쳤다면 정부·여당의 책임자인 대통령이 막중한 책임을 지고 국민의 양해를 얻어야 했지만 이런 절차도 없었다. 지금와선 연기론을 공개적으로 주장했거나 묵시적으로 용인했던 사람들까지도 연기론을 펴기 어렵게끔 정부·여당은 연기론의 타당성과 합법성의 입지마저 함께 없애버린 것이다.
○국민에 양해 구해야
이제 다시 연기론의 명분과 입지를 되찾으려면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서 국민의 양해를 구해야 한다. 그리고 연기할 수 밖에 없는 어려운 사정을 국민앞에 호소해야 한다. 이를 계기로 국회가 열리고 국회안에서 연기와 실시의 논의를 거쳐 결과에 승복하는 과정을 취해야 할 것이다. 신문광고로 연기론을 홍보한다고 연기론의 명분을 다시 살릴 수는 없는 것이다. 단독개원과 기습식 법개정이 마지막 숨은 카드여서는 안될 것이다.
단체장선거의 실시여부는 6공의 민주화 작업을 마무리짓는 마지막 기회라는 확고한 인식아래 정면으로 맞서 난국을 풀어가는 대통령의 정치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되는 지금이다.<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