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탈당파의 신당은 가면정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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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2월 초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의원들이 어제 '중도개혁통합신당'이란 새로운 당을 만들었다. 이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율이 10%대로 추락하고 당이 고사(枯死)상태로 들어가자 범여권 통합신당을 만들겠다며 탈당했었다. 당시 우리는 실정 책임을 공유해야 할 사람들이 자신들만의 살 길을 위해 명분과 도의가 없는 행동을 하는 것이라 지적한 바 있다. 통합당을 만들겠다던 사람들이 달랑 자신들의 작은 당을 만들어 버리니 두 번 속는 기분이다.

민주당 또는 다른 정치세력과 통합한다는 자신들의 약속을 스스로 배반하면서 이들은 왜 이렇게 서두르는가. 이달 중순에 지급되는 분기별 국고보조금을 받으려면 그 전에 정당을 만들어야 되기 때문에 서두는 것 아닌가. 신당의 의원이 20명일 경우 국고보조금은 약 13억원이 된다. 이들은 빨리 정당을 만들어 놓아야 열린우리당의 추가 탈당을 유도하고 범여권 통합작업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는 정치적 계산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들의 셈법으로도 향후 정계개편이 본격화되면 이 당은 없어질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토지보상비를 노리고 가건물을 지어놓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한국의 정치사에서는 이와 같은 가건물 정당이나 대선을 앞두고 급조됐다가 선거가 끝나면 허공으로 사라진 거품 정당이 적잖다. 1992년 대선 때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국민당이나 이종찬 의원의 신당이 그러했고, 97년 대선 때는 한나라당을 탈당한 이인제 전 경기지사의 정당이 그러했다. 2002년엔 정몽준 의원의 정당이 같은 길을 밟았다.

당을 급조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새 정치를 얘기하고 개혁정치를 외친다. 그러나 그들은 구 정당들 못지않게 비개혁적이었으며 명분과 맷집은 오히려 더 약했다. 그들의 신당은 유권자 앞에서 자신들의 얼굴을 가리는 가면에 불과하다. 정객들은 가면을 벗으라. 통합당을 만들겠다고 모태를 버렸으면 13억원에 조급해 하지 말고 묵묵히 그 일을 하는 것이 그나마 떳떳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