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오는 '괴짜' 바이올리니스트 나이젤 케네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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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 장면1=1990년 BBC 심포니의 60주년 기념 음악회. 바이올리니스트 나이젤 케네디가 드라큘라 의상을 입고 무대에 올랐다. 검은 블라우스와 분홍 부츠, 하얗게 칠한 얼굴로 연주한 베르크 협주곡은 큰 인기를 끌었다.

# 장면2=2001년 런던심포니 오케스트라에는 비상이 걸렸다. 엘가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하는 케네디가 "리허설 횟수를 늘리지 않으면 연주하지 않겠다. 앞으로도 런던에 오지 않겠다"고 선언했기 때문. 리허설이 공연 당일 한번으로 잡힌 데 불만을 품은 탓이다. "엘가 곡을 연습하는 데 대해선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이 없다"며 화를 낸 케네디 때문에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법정 공휴일에 '소집'을 당했다.

도발적인 연주, 파격적인 시도로 유명한 '악동' 나이젤 케네디(51)가 9일(성남아트센터)과 10일(세종문화회관) 한국에서 연주한다. 론 카터, 잭 디조넷 등과 함께하는 재즈무대다. 바로크부터 록음악까지를 아우르는 그가 한국에서 리사이틀을 여는 것은 처음이다.

케네디는 클래식에서 정통 코스를 밟은 엘리트 연주자다.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첼로 수석인 아버지와 피아노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난 그는 세 살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여섯 살에 예후디 메뉴인의 영재 음악학교에 입학했다. 줄리아드까지 거친 그가 1993년 내놓은 비발디의 '사계'(EMI) 음반은 200만 장이 팔려, 클래식 부문 최다 판매로 기네스북에 올라가기도 했다.

그는 "예후디 메뉴인 학교에 다닐 때부터 기숙사 침실의 베개 밑에 재즈 음반을 숨겨놓고 들었다"고 했다. 줄리아드에 들어간 이후에는 프랑스의 재즈 바이올리니스트 스테판 그라펠리에게 재즈 바이올린 법을 지도받았다.

줄리아드의 도로시 딜레이 교수는 당시 그에게 "네가 대가로 성장하는 데 심각한 방해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고 클래식 음반 녹음이 취소되기도 했다. 케네디는 한 인터뷰에서 "음악가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나는 (클래식에서) 재즈의 영역에 공식적으로 들어왔고, 여기에 남아있으려 한다"고 했다.

머리를 삐죽삐죽 세운 51세의 '럭비공' 연주자는 술집에서 연주하고 클래식 음악을 재즈풍으로 바꾸는 일을 즐긴다. 1997년 지휘자 사이먼 래틀과 함께 앨범을 낸 그는 "래틀이 내가 클럽에서 연주하는 데 반대해 녹음 당시 사이가 매우 안 좋았다"며 "하지만 내가 무슨 연주를 하건 그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라고 독설을 퍼붓기도 했다. 2002년 예정됐던 내한연주도 "축구경기를 보겠다"며 취소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이 '이단아'의 실력만큼은 클래식과 재즈 모두에서 호평을 받는다. 그의 콘서트 소식은 영국 일간지의 1면을 장식한다. 타임스는 "이 세상의 어떤 바이올리니스트도 이렇게 놀라운 변화를 이뤄낼 수 없다"고 평했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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