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는 위기 아닌 기회 … 국산 쌀, 밀가루 만큼 용도 다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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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키아 티엠씨 이재욱(66) 전 회장이 곡물류의 미세가공기술로 FTA를 극복하자고 말하고 있다. [사진=송봉근 기자]

경남 마산자유무역지역 내 휴대전화 생산업체인 '노키아 티엠씨'의 최고경영자(CEO)에서 농부로 변신한 이재욱(66) 전 회장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오히려 기회"라고 말한다. 그는 휴대전화 생산 때 적용했던 미세가공기술을 쌀 농업에 접목하고 있다. 쌀을 미세가공해 다양한 쌀 식품을 만드는 시도다.

2003년 말 경영에서 물러난 뒤 마산시 진북면 영학리 학동마을에 정착한 그는 한.미 FTA가 타결되자 또 다른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의 곡물 분쇄 기술을 이용해 가장 많이 만드는 게 밀가루다. 밀가루의 입자는 20~40미크론m(μm, 100만 분의 1m) 수준. 밀가루 식품이 많은 이유는 이렇게 입자가 작아지면 다양하게 가공해 음식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의 밀 시장이 클 수밖에 없는 배경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에 따르면 그동안은 쌀가루를 활용해 식품을 만드는 게 쉽지 않았다고 한다. 쌀에는 밀에 들어 있는 글루텐이라는 단백질이 없어 가공해도 찰기나 쫄깃쫄깃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기존 쌀국수가 끈기 없이 쉽게 끊기는 이유다.

그는 "쌀을 미크론 이하 수준으로 빻으면 글루텐 단백질이 없어도 밀과 같은 끈기와 쫄깃쫄깃함이 생기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하면 쌀가루로 만들 수 있는 음식 종류가 늘어나고 쌀 시장이 커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는 휴대전화의 미세 칩 회로기술을 본떠 쌀을 미세하게 빻는 기술을 고안했다.

그는 6일 "전문가들과 함께 초고속으로 도는 새로운 곡물 분쇄기에 물과 함께 쌀을 넣어 밀가루같이 미세한 쌀가루를 만드는 기술을 거의 마무리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이렇게 미세가공한 쌀가루를 이용해 국수, 냉면, 덮밥소스, 스파게티, 핫도그, 샌드위치, 보쌈용 떡 등 시제품을 개발했다.

그는 올해 안에 밀가루보다 더 미세한 쌀가루를 만들어 쌀식품 개발을 마무리하고 시판에 나설 계획이다. 최근 다시마 등 해산물을 세밀하게 가공해 과자에 코팅하는 일본 업체를 찾아내 기술 제휴를 검토하고 있다.

입자 크기에 변화를 주면 찰기와 맛 등을 다양하게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도 찾아냈다. 메밀.콩 등 다른 곡류와 섞어 가공하기도 수월했다고 한다. 시제품의 맛을 테스트한 결과 반응도 좋았다.

그는 이러한 아이디어가 휴대전화를 생산한 경험에서 나왔다고 한다.

"초기 휴대전화는 통화 기능만 있었죠. 미세회로기술 등을 적용한 초정밀 칩이 장착되면서 고속이동 중 통화 품질이 좋아지고 동영상 전송 등 전혀 새로운 기능이 생기는 것을 보고 농업에도 적용해 보고 싶었어요."

문제는 쌀의 가격이다. 밀가루보다 월등히 비싸 다양한 쌀 식품을 만들더라도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그는 쌀 생산비를 낮추는 방안을 찾아내 쌀의 가격을 낮추는 시도도 하고 있다.

그가 시도하는 생산 방법은 논을 갈아엎지 않고, 농약.비료.제초제.퇴비 등을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농법이다. 그는 '태평농법'이라는 이 농법을 농부 이영문(53.경남 하동군 옥종면)씨로부터 배웠다. 여기에 4년간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얻은 자신의 경험도 보탰다.

이 농법은 논을 갈지 않는 대신 곡류를 수확한 뒤 볏짚.보릿짚.밀짚 등 부산물을 논에 뿌린다. 이렇게 하면 논은 부드럽게 변해 씨앗이 쉽게 뿌리내릴 수 있다. 토양은 온갖 미생물과 천적들이 활동하며 병해충을 막는다.

이 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비용은 기존 방법의 10% 수준에 불과하다. 그는 4000평의 논 농사를 관리인 한 명과 함께 둘이서만 한다.

"우리 농산물의 생산비를 낮춰 국제경쟁력을 갖추고 우리 쌀로 만든 식품을 해외로 수출하면 한.미 FTA를 반겨야 할 것 아닙니까."

서울대 공대 출신으로 1986년 적자회사를 맡아 18년 만에 회사를 100배 이상 성장시킨 그가 내린 결론이다.

마산=김상진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bksong@joongang.co.kr>

이재욱(66)씨는

-서울대 전자공학과 졸업

-1986~2003년 마산자유무역지역 내 노키아 한국법인인 노키아 티엠씨 대표

-취임 당시 노키아 티엠씨는 연간 50억원 적자, 현재 국내 판매 없이 수출만으로 연매출 3조원 6년간 계속

-재임기간 연간 순이익 700억~2000억원 달성. 구조조정 한 번 없는 노사 관계 유지

-2001년 필리핀 정부로부터 1등 기사 훈장 받음

-2003년 말 퇴임 뒤 마산시 진전면으로 귀농, 친환경농법과 식품가공법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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