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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와 나이프에 얽힌 기억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호 27면

홍익대 정문 건너편 골목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알라또레’(02-324-0978)에 자리 잡고 앉자 갑자기 오래된 기억이 떠오른다.

김태경·정한진의 음식 수다

“대학 들어가자마자 미팅에 나갈 일이 있었죠. 그때는 경제적이면서도 분위기 있는 곳이 경양식집이었잖아요. 거기에서는 돈가스를 시키면 밥은 물론이요, 단무지와 김치가 함께 나오는 게 일반적이었고요. 그런데 제일 신경 쓰이는 것이 바로 포크와 나이프를 어느 손에 잡느냐는 것이었죠.”

물론 실수하는 일이 생기고 얼굴이 붉어져 상대방 눈치를 살펴야 했다. 이러한 씁쓸한 기억 때문에 오랫동안 양식당에 들어가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긴장되곤 했다.
“수저식 문화권에 속하는 우리로서는 익숙하지 않아 실수할 수도 있고 어색한 게 당연하지. 게다가 양식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을 시절 아니야.”

사실 음식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서도 음식 문화권을 나눌 수 있다. 언젠가 아프리카 출신 친구의 집에 초대를 받았는데 손으로 식사를 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에 처한 적이 있었다. 서투른 손가락 놀림에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몰랐다.

“유럽에서도 포크와 나이프의 사용이 일반화된 것은 오래되지 않았지. 19세기에 이르러서야 대중화된 걸로 알고 있는데.”

유럽 중세의 식탁에서 근엄한 귀족들이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은 흔한 장면이었다. 손으로 먹고서 테이블보에 손을 쓱 닦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작은 칼을 들고 다녔는데 이를 식사할 때 사용했으며 다른 용도로도 쓰였다.

“16세기 초반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의 카테리나(카트린)가 프랑스로 시집가면서 식탁 도구와 자신의 요리사를 데려간 것을 계기로 포크가 프랑스에 전해졌지만 일반화되기까지는 200년 이상이 걸렸죠. 종교적인 이유로 포크 사용을 거부하기도 했는데, 신이 내려준 몸이 아닌 다른 도구를 사용하는 것을 신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손으로 먹는다는 것을 야만적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그러한 것들이지.”

손으로 밥을 먹는 수식 문화권은 세계 인구의 40%를 차지하는 가장 큰 식생활 문화권이다. 주로 이슬람교권과 힌두교권이 이에 속한다. 종교적인 이유나 음식 재료의 차이에 따른 이유도 있지만 그들은 손이 가장 깨끗하다고 생각해 손을 쓴다.

“예전에 미팅을 경양식집에서 하려고 했던 거나, 좀 분위기 있는 데이트를 하려면 레스토랑에 가려고 하는 것에는 서구문화가 우월하다는 의식이 알게 모르게 깔려 있는 것이 아닐까요. 따라서 포크와 나이프만 보면 주눅이 들고 잘 알지 못함을 부끄러워하는 것이 그러한 잠재의식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좋은 레스토랑이 분위기 있는 것은 사실이지. 서구식 식습관을 존중하는 것도 중요하고. 하지만 수식 음식문화와 같은 문화적 차이를 존중해야 하는데 때로는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지.”

타 문화에 대한 몰이해 때문이기도 하지만, 식문화가 가장 일상적이고 익숙한 문화여서 그것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더 어려운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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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것 먹기를 낙으로 삼는 대학 미학과 선후배 김태경(이론과실천 대표)·정한진(요리사)씨가 미학(美學) 대신 미식(美食)을 탐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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