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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다시 폭풍 속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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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힘을 합치려면 먼저 할 일이 있다. 그 점이 오늘 잘 해소되길 바란다."

4일 오후 서울 염창동 한나라당사에서 열린 3자회동. 인사말에서부터 박근혜 전 대표가 이렇게 치고 나왔다. "모처럼 당사가 환해졌다"며 덕담으로 회동을 시작하려던 강재섭 대표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

결국 70분간 진행된 이날 회동은 악수를 나눌 때까지만 화기애애했다. 이후로는 작정한 듯 말을 쏟아내는 박 전 대표와 이를 막아내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대결 구도가 선명했다.

'창'과 '방패'의 대결. 박 전 대표가 특히 화력을 집중한 분야는 경선 방식이었다. 한 참석자에 따르면 박 전 대표는 약 5분간 쉬지 않고 경선 방식에 대한 이 전 시장 측의 주장을 비판했다고 한다. 두 주자가 경선 방식을 놓고 직접 설전을 벌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일단 '전투'가 시작되자 전선은 네거티브(상대방 흠집 내기) 논란으로 옮겨가면서 증폭됐다.

▶박 전 대표="8월에 20만 명이 참가해 경선을 치르는 안도 내가 크게 양보해 수용한 것이다. 또 바꾸자고 하면 당이 흔들리는 걸로 비친다."

▶이 전 시장=(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다)"그래도 (당원과 일반인의 경선참여) 50 대 50 원칙은 지켜야 한다. 박 전 대표도 과거에 (일반 국민의 참여를 넓히는 쪽으로)얘기해 오지 않았나. 상대방(열린우리당이)이 100% 오픈 프라이머리(완전 국민경선제)를 하게 되면 국민후보라고 주장할 텐데… 우리가 국민참여 비율이 적으면 어떤 좋은 사람도 한나라당에 올 수가 없다. 지금의 경선 룰 가지고는 두 사람밖에 (경선)할 사람이 없다."

▶박="당헌이란 건 헌법과 같다. 경기에 이미 들어온 사람이 규칙을 바꾸자고 하면 안 된다. 나는 지난번 혁신안이 만들어질 때 나한테 불리했지만 개입하지 않았다."

▶이="한나라당 의원(박 전 대표 측 유승민 의원 지칭)이 라디오에 나와 '한반도 대운하가 대국민 사기극'이라고 하더라. 열린우리당 의원인 줄 알았는데 아니어서 충격받았다."

▶박="예전에 (이 전 시장은)'여자는 애를 낳아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이=(아니라는 취지로)"군대라도 동원해 수도 이전 막겠다'고 했다는 박 전 대표 발언에 대해 고발하자는 캠프 내 의견도 내가 직접 수습했다."

▶박="어떤 의원(이 전 시장 측 진수희 의원 지칭)은 '박 전 대표가 대선 후보가 되면 당이 망한다'고 하던데 그건 네거티브 아니냐."

4.25 재.보선 참패의 책임을 놓고도 두 사람의 공방은 계속됐다.

▶박="공동유세가 불발된 것 때문에 대전 (서구을) 선거 책임이 나한테 있다고 하는데 부당하다. 난 후보를 위해 열심히 했다."

▶이="그렇게 공격한 적 없다. 과거 일인데 너무 과민하게 반응하지 말라."

팽팽한 긴장이 흐르자 강 대표는 서둘러 9개 항으로 된 제안서를 읽은 뒤 두 사람의 동의를 구했다. ▶경선 결과 승복▶22일~6월 28일 전국 5개 권역에서 정책토론회▶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국민검증위 출범▶캠프 참여 의원 10명 이하로 제한▶음해성 언동, 향응.금품 제공, 불법 선거운동 엄단▶대선 주자 간담회 수시 개최▶시.도지부장 선거 연기▶결원된 최고위원 선출 시 과열 선거운동 금지▶경선 룰 확정은 당 대표에게 위임한다는 내용이다. 이를 근거로 유기준 대변인은 회동이 끝난 뒤 "두 주자가 당에 경선 규정 변경을 일임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박 전 대표와 통화하고 온 이정현 특보는 기자들에게 "할 말이 있다"면서 당사 마당으로 나가 "박 전 대표는 당에 백지수표를 준 적이 없다"고 대변인의 발표를 부인했다. 이 한마디로 강 대표의 봉합 시도는 효력을 크게 잃게 됐다. 4.25 재.보선 패배로 시작된 한나라당의 내분은 다시 폭풍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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