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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평] 사담은 '종이 독재자'로 끝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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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사담 후세인의 전격적인 체포를 계기로 절대 다수의 이라크인은 새로운 이라크를 위해 전진할 수 있는 여유와 희망을 되찾았다.

1979년 7월에 집권한 후세인은 20세기가 배출한 몇 안 되는 최악의 독재자 중 한 명이었다. 일부에서는 사담 후세인의 초췌한 체포 장면을 보고 미군이 사담 후세인과 그의 추종자들의 체면을 짓밟았다고 비판하고 있으나 그의 말 한마디에 희생당한 수만명의 이라크 국민과 약 18만명의 쿠르드 소수 민족의 영혼은 과연 누가 책임지겠는가.

*** 수백만명 민간인 잇따른 학살

물론 후세인이 강행한 학살보다 더 끔찍하고 잔인한 학살도 분명히 있었다. 30년대 후반부터 소련의 지도자 이오시프 스탈린은 약 2백만~3백만명의 러시아인과 각종 소수 민족을 죽음으로 몰아쳤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독일의 히틀러는 '최후의 해결책'(final solution)의 일환으로 6백만명의 유대인들을 독가스실에서, 그리고 잔인한 인체 실험으로 학살했다. 37년 12월 일본제국 군인들이 중국의 난징(南京)에 진입, 불과 40여일 만에 30만명의 중국 민간인을 죽였고 약 2만명의 여성을 성폭행했다. 45년 이와 같은 대학살을 원천적으로 예방하고 봉쇄해야 한다는 믿음으로 유엔이 창설됐지만 역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전체주의 체제하에 수백만명의 민간인이 학살당했다.

49년에 집권한 중국의 공산당이 통일 정부를 수립한 이후 대약진(大躍進).문화혁명(文化革命), 그리고 아사를 계기로 약 3천5백만명의 중국인이 사살당했고 75년에 권력을 잡은 캄보디아의 폴 포트 정권은 약 1백80만명의 캄보디아인을 무자비하게 죽였다. 94년 앙골라 루안다에서 과격 후투족들이 약 80만명의 투시족들을 난사했고 95년부터 99년까지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에서 약 20만명의 회교도 신자들이 '인종 청소' (ethnic cleansing)의 대상자가 되었다.

이러한 최악의 범죄들을 단편적으로 설명할 수 없으나 공통점은 예외없이 전체주의와 일인 독재 체제하에서 자행됐다는 점이며 특히 이들 모두가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수백만명의 희생자들 목숨을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앗아갔다는 것이다. 20세기의 문명은 말할 수 없을 만큼의 발전과 성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탈을 쓰고 이러한 대학살들을 고안, 실천한 점에 비추어 볼 때 과연 정의와 진리가 살아 있는가 하고 충분히 반문할 수 있다.

지구촌에는 여전히 많은 일인 독재자와 전체주의 정권들이 존재하고 있다. 이들은 여전히 자국민의 행복과 번영보다는 본인들의 생존과 그 체제를 지탱하는 가족과 추종세력들을 위해 무력과 세습과 강압으로 권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대외적으로는 외세의 압력에 대응하기 위한 일사불란한 민족단합 과시, 사회분열을 촉진시킬 수 있는 각종 오염사상으로부터의 원천적인 봉쇄, 그리고 개인숭배를 통한 주체적인 이데올로기의 확립 등을 이유로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이들의 앞날과 최후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 '총폭탄'으로 무장한 북한정권

후세인은 불과 30일 전에 안가에서 연합군에 대한 지속적인 성전과 '최후의 전투'를 강조했으나 이미 민심은 그를 완전히 떠난 상태였다. 한 때에는 모든 학교.병원.정부청사, 그리고 가정집에도 그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으며 만인들의 아버지와 대국의 지도자로 군림했으나 실질적인 상황은 정반대였다.

후세인을 최근자에서 보좌하고 보호했던 공화국 수비대, 정권의 상징이었던 바트당, 그리고 후세인 가문과 정권실세들을 지켜주었던 비밀경찰도 지난 3월 전개된 연합군의 공격 직전부터 빠른 속도로 와해됐다. 결국 후세인의 곁에는 단 2명의 경호원만 남아 있었으며 그의 최후는 '종이 독재자'로 종식됐다. 북한 당국은 북한주민들이 '총 폭탄'으로 무장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지만 '총 폭탄'의 궁극적인 함의를 보다 근본적으로 고민할 때가 오지 않았을까.

이정민 연세대 교수.국제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