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2007 KB국민은행 한국리그' 실수의 게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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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이창호 9단 (KIXX) ●배준희 초단 (제일화재)

◆장면도(1~7)=초단 배준희가 KIXX의 주장 이창호 9단을 상대로 KB 2007 한국리그 데뷔전을 치르고 있다. 제일화재가 과감히 2장으로 발탁한 배준희는 최근 바둑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초단 3인방'의 한 사람. 그러나 이창호 앞에서는 몇합이나 버틸 수 있을까.

하지만 예상은 또다시 빗나갔다. 흑을 쥔 배준희는 초반부터 화려한 공중전으로 좌변 백△들을 잡아 우위에 섰다. 게다가 몸조심할 상황에서 백의 보고인 우하귀마저 유린하며 정면 도전하고 있다.

급해진 건 이창호 쪽이다. 그의 초조로움과 분노가 멀리서도 느껴진다. 검토실에선 "이제 와선 답은 하나. 총공격뿐이다"고 한다. 하변 흑▲들에 대한 공격이 백의 마지막 기회라는 것이다.

◆실전진행(1~11)=진땀을 흘리며 숙고하던 이창호는 놀랍게도 멀리 우상 백1~5를 두었다. 불같이 급한 상황인데도 칼자루를 상대방에게 넘겨주며 기다리기로 작정한 것이다.

공격을 걱정하던 배준희는 6, 8의 콤비블로를 던지며 행복에 젖어든다. 집은 아직 충분하니 중앙만 막으면 바둑은 끝이다. 하지만 마지막 못질이 빗나가버렸다. 10으로 젖힌 수는 너무 손바람을 낸 수. 순간 와신상담하던 백은 11로 끊어 전면전에 나섰고 이 싸움에서 죽었던 좌변 전체를 살려내며 바둑을 역전시킨다.

10은 11자리에 곱게 늘고 흑A 받을 때 10으로 꼬부려 막아야 했다. 이랬으면 흑승이었다.

배준희로서는 영영 잊지 못할 가슴아픈 실수였겠지만 이 대목은 바둑이 '실수의 게임'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또 하나, 패착과 승착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백5의 기다림은 결과적으로 승리를 낚아냈지만 졌으면 '최후의 패착'이란 죄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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