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의 원자력동료들에게/이창건(시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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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IAEA(국제원자력기구)에 제출한 그쪽의 핵시설 목록은 그곳 원자력 동료들의 수고가 그간 얼마나 많았던가를 보여주는 좋은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IAEA의 국제원자력보문집에서 수록된 북쪽 동료들의 논문을 읽을때마다 저는 제네바회의에서 귀측 대표들에게 말한대로 우리 민족은 역시 우수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때 말한 통일된 원자력용어집 같은 것도 남북이 협력해 만들면 좋겠습니다.
○재처리 손안대야 통일
세상사람들은 그쪽의 방사화학실험실이 연구시설이 아니라 플루토늄 분리를 위한 공장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실험실 규모를 훨씬 넘는 1백80m 길이에 몇층 높이의 거대한 설비고,또한 당신네들 입으로 플루토늄을 분리했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가동중인 발전용 원자로도 없이 플루토늄을 분리한다는 건 마치 「구두위에 양말신는 격」이고 「넥타이 맨 다음에 와이셔츠 입는 것」과 다를바 없기 때문입니다.
몇년전 저는 서독 박가스도르프의 재처리 공장을 방문한바 있는데 독일 통일과 더불어 그것은 즉각 폐쇄되었습니다. 최근엔 칼수르헤 원자력연구소의 재처리실험 시설도 해체키로 한 것으로 보아 통일국가가 되려면 플루토늄을 만져선 안된다는 전제가 바탕에 깔려 있다고 봐야 합니다. 선비는 남의 오얏나무 밑에서 갓끈을 고쳐선 안되고,오이밭을 지날때는 신들메를 매만져선 안된다고 하니 정말 남북통일을 이룩하려면 플루토늄을 분리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지난 3월 호주대학의 피터 헤인스교수는 한국의 핵에 대한 논문에서 한반도에서의 핵개발시도는 통일을 영원히 가로막는 장애요소가 될 것이며,통일후의 핵무장은 주변국가로부터의 선제공격 구실을 유도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사도 가즈미교수를 비롯한 일본의 전문가들도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플루토늄 분리는 통일에의 결정적 걸림돌이 되고,나아가 반민족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결국 그쪽의 핵무장 기도는 일본에 핵사무라이 주도 대동아 공영권의 맹주가 되는 핑게를 만들어 줄 뿐입니다.
오래전 이쪽은 강대국이 넘겨준 원자력정조대를 차게 되었고,또 남북한의 비핵화공동선언때 우라늄 농축도 안하겠다,화학재처리공장도 안갖겠다는 다짐과 함께 정조대의 버클을 한층더 졸라 맸으므로 여기의 핵확산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주변국 공격 구실줄뿐
그리고 이 원자력 정조대의 열쇠는 주변 4대국이 갖고 있는데 열쇠모양이 서로 달라 네 나라가 따로 따로 열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중 어느 나라도 그것을 열어줄 리가 없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의 원자력개발 계획은 밖에서 훤히 들여다 보이는 무균상태의 인큐베이터 안에서 자라게된 것입니다.
이라크는 IAEA의 안전조치를 받고 있는 동안에도 우라늄 농축공장을 가동하고 있었고,또 그 대규모 시설을 은폐하기 위해 15㎞외곽에 발전소를 짓고 지하케이블로 전기를 공급받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하고도 그들은 똑같은 시설을 다른 곳에 또 만들었는데 문제는 그런 시설이 발각된 것만이겠느냐는 것입니다.
모스크바대학 본관 건물과 똑같은 설계의 건물이 모스크바 시내에 일곱 군데나 있는 것으로 보아 그런 정치체제의 국가에서는 같은 것을 여러군데 짓는 것이 유행인가 봅니다. 그렇다면 영변에만 그런 시설이 있다고 누가 믿겠습니까. 그쪽에서 너무도 이상한 일을 자주하니 최근 이쪽 땅속에서 들려오는 기계소리가 혹 땅굴 잘파는 그쪽 강경파들이 우리 수도권의 지하에서 핵실험한 다음 그것을 이쪽에 뒤집어 씌우려는 작업을 하는데서 오는 소리가 아닐까 하는 얘기도 있습니다.
우리 그러지 말고 서로 화해하고 협력합시다. 몇년전 저는 남북간의 전력교류를 제기한 일이 있습니다. 남쪽에서 전기가 모자라는 여름철에는 북쪽 댐에서 넘쳐 흐르는 물로 발전한 것을 빌려쓰고 대신 북쪽에서 전기부족이 극심한 겨울에 같은 양의 전기를 돌려주면 멋진 상부상조와 유무상통이 되지 않겠습니까. 전기는 포장할 필요가 없는 물건이어서 보내고 받을때 자유민주주의나 주체사상이 묻어갈 염려도 없고 운반자도 필요없습니다.
우리는 그쪽에서 87년부터 가동중이라는 연구용 원자로와 현재 건설중인 원자로의 안전에 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40년전 설계의 그 노형은 영국 윈드스케일에서 큰 사고를 일으킨바 있는 가스냉각로가 아닙니까. 체르노빌 대참사에서 보았듯이 원자로사고에서는 너와 나의 구별이 없고 오직 우리만이 있을 뿐입니다.
○40년전 노형 사고위험
방사청 물질은 여권없이도 국경선을 넘나들고 비자안받고도 어디에나 갈 수 있으므로 안정성 확보를 위해서는 이념이나 정치제도를 초월해 공동대처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두달전 대만에 갔을때 그곳 고위층에게 중국 광동근처에 짓고 있는 원자로의 운전원들을 대만에서 훈련시키는게 좋겠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영변과 태천원자로 및 앞으로 함경남도 신포에 건설할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성 향상과 운전요원을 위한 교육훈련에 우리 다 함께 힘을 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가 판문점에서 양측 대표들간에 진지하게 논의되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원자력연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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