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값 치솟자 「화실도둑」극성/천경자·손수광화백 등 잇따라 털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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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유명화가들 앞다퉈 도난방지 설비
유명화가들이 그림도둑의 「예방」을 받고 있다. 올들어서만 벌써 5명이 잇따라 작품을 도난당했다.
도난사건이 잦아지자 유명화가들은 화실에 경보기 등 도난방지 설비를 갖추고 방문객의 신분을 까다롭게 확인하는 등 도난방지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지난 2월28일 원로여류화가 천경자씨(68)가 김포공항에서 외국을 돌며 스케치해온 작품 10여점이 든 가방을 도둑맞은 것을 비롯해 손수광·김차섭·황창배·박영선씨 등이 차례로 작품을 도난당했다.
또 지난 5월14일엔 원로소설가 박경리씨 집에 도둑이 들어 고 이봉상화백의 유화 1점 등 4점을 훔쳐 달아났다.
이는 경찰에 신고되었거나 공개된 경우이며 이밖에 작품을 도난당했어도 화가가 숨기고 있는 경우가 적지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술품 도난사건은 오래전부터 이따금 발생해 왔으나 90년대이후 더욱 잦아졌다. 특히 최근의 도난사건은 예전처럼 미술관이나 공공건물이 아니라 작가의 화실이 직접 목표가 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처럼 미술품 도난사건이 부쩍 늘고 있는 것은 90년대 들어 미술품값이 크게 오르면서 미술품이 도둑들의 새로운 목표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으로 미술계는 보고 있다.
경남 합천 해인사근처의 화실에서 작업해온 서양화가 손수광씨(49·중앙대교수)는 지난 3월말 두번이나 도둑이 들어 화실에 있던 자신의 작품과 민화·불상 등 40여점을 모두 도난당했다. 도둑은 손씨가 학교에 출강한 사이 마당에 트럭을 대놓고 작품을 몽땅 실어간 것으로 밝혀졌다.
또 미국에서 돌아와 강원도 춘천군 북산면의 폐교된 국민학교를 사들여 작업장으로 사용해오던 서양화가 김차섭씨(50)도 지난 5월6일 도둑이 들어 최근작 3점을 도난당했다.
지난 3월 교수직(이화여대)을 사임한후 충북 괴산군 증평에서 작업해온 한국화가 황창배씨(45)도 지난 5월13일 외출한 사이에 도둑이 창문을 부수고 침입해 최근작 4점을 훔쳐갔다. 김씨와 황씨는 최근 TV프로에 소개돼 작업현장이 많은 이들에게 알려졌었다.
또 지난 5월15일에는 원로서양화가 박영선씨(82)의 서울 청파동집에 30대로 보이는 강도 2명이 제자라고 속이고 들어가 가족들을 흉기로 위협하고 박씨의 인물·누드화 20점과 골동품 10여점을 빼앗아 달아났다.
경찰은 도둑들이 박씨의 작품가운데 화랑가에서 인기가 높은 인물·누드화만 골라간 것으로 보아 미술품 전문강도들의 소행으로 보고 장물품표를 만들어 전국 화랑가에 배포했다.
도난사건을 막기 위해서는 방지설비의 장치도 중요하지만 작품사진을 찍어두는 것도 필요하다. 도난사건이 발생했을때 장물품표를 만들어 화랑가에 배포함으로써 도난작품의 거래를 예방하고 범인을 잡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이창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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