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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 진리가 있다는 … 두 산은 같은 산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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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A국의 변방에 산이 있습니다. A국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고 부릅니다. 국경을 맞댄 B국의 변방에도 산이 있습니다. B국 사람들은 '어떤 산 보다 더 높은 산'이라고 부르죠. 정상은 늘 구름에 가려져 있어 보이질 않습니다. 사람들은 궁금해 할 따름이죠. "정상에는 무엇이 있을까' '꼭대기는 어떻게 생겼을까' '거기서 보는 풍경은 대체 어떤 걸까.'

전설도 있습니다. A국에는 '산의 정상에 진리가 있다'는 말이 전해져 오죠. B국도 마찬가지죠. '정상에는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예언이 옛날부터 내려오고 있습니다. 숱한 사람들이 그 산을 올랐습니다. A국에선 남쪽 루트로만 오르고, B국에선 북쪽 루트로만 오르죠. 남쪽 길에는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죠. 반면 북쪽 길에는 구비마다 유채꽃이 만발합니다. A국과 B국 사람들은 늘 다투죠. "복사꽃을 통해야만 진리에 들 수 있다" "아니다. 유채꽃을 밟지 않고선 정상에 갈 수가 없다." 아무도 정상을 밟고 내려오는 이는 없습니다. 길이 너무 험하기 때문이죠. '길 없는 길'을 가야 하니까요. 그래서 사람들은 급기야 "산의 정상은 죽어야만 갈 수 있다"고 말할 정도가 됐죠.

그렇다고 정상에 올랐던 이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A국에선 2500년 전에 '석가모니'란 사람이 정상을 밟았다고 하네요. 또 B국에선 2000년 전에 '예수'라는 이가 정상에 있었다고 합니다. 이들에 대한 기록도 있습니다. 바로 '불경'과 '성경'이죠. 그런데 '성경'과 '불경'에서 말하는 남쪽과 북쪽의 등산로, 주위 풍경은 사뭇 다릅니다. 결국 사람들은 "이 산은 이 산이고, 저 산은 저 산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지난달 27일 서울 조계사에서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와 한국교수불자연합회가 학술 토론회를 공동주최했죠. 학자들은 두 산의 정상인 '구원'과 '해탈'의 공통 분모를 찾기도 하고, 차이점을 따지기도 했습니다.

김용표(한국교수불자연합회장,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는 "천하의 진리가 둘이 아니요, 성인의 진리가 둘이 아니다. 진리는 독점의 대상이 아니라, 누구나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또 권오성(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목사는 "인간의 죄와 번뇌가 다른 것이다. 십자가의 은혜와 깨달음도 같을 리 없다"며 "그런데 이런 차이가 '사실은 똑같은데 종교 체계와 표현하는 언어가 달라서 다른 것으로 보이는 것인지?'알고 싶다"고 했습니다.

갑론을박이 오갔습니다. 토론회는 '두 산이 같은 산인지, 아닌지' 결론을 못 내렸죠.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니까요. 그래도 가슴은 뭉클했습니다. '내가 오르는 이 산에, 다른 루트가 있을 수도 있구나' '이 길에도 하나님이 있을 수가, 저 길에도 부처님이 있을 수가 있구나'란 생각이 참 각별했거든요. 거기에 사랑과 자비의 진면목이 있더군요.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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