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보도」통제 허문 미 언론/이상일국제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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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미국언론은 미 국방부와 지난 10개월간 전쟁보도 문제에 관한 줄다리기 끝에 최근 9개항의 보도원칙에 합의했다.
그 골자는 ▲전장에서 기자의 자유로운 독자취재를 원칙으로 하며 ▲풀 취재(기자단 공동취재)는 독자취재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경우에만 인정하되 36시간안에 풀제를 해소해야 하고 ▲기자는 특수작전 투입부대를 뺀 모든 주요부대를 접촉할 수 있다는 것 등이다.
언론의 취재대상 선택에 대한 검열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지만 미국 국내에서는 이번에 특히 보도활동에 제약을 주는 풀제가 원칙적으로 배제된 점을 들어 「언론의 위대한 승리」라고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제까지 전쟁보도에 대한 미 정부의 통제는 지나칠 정도로 까다로웠다.
미 언론은 월남전 당시 뉴욕타임스지의 국무부 비밀보고서 폭로사건을 계기로 언론자유의 지평을 한껏 넓혔으나 그 이후에도 숱한 좌절을 겪어야만 했다.
83년 미국이 그레나다를 침공했을때 미 언론은 당국의 보안으로 침공사실조차 몰랐다.
언론이 뒤늦게 사실을 알아채고 특파원을 현지에 급파했을 때는 허탈하게도 이미 작전이 끝난 뒤였다.
89년 파나마침공때는 언론사의 풀 취재단이 작전에 동행하기는 했으나 닭장 같은 미군기지안에 갇혀 전투현장을 직접 접하지 못했다. 이같은 보도통제는 지난해 1월 발발한 걸프전때 더욱 극심했다. 미 언론은 군당국이 일방적으로 가공한 내용을 속절없이 보도해야 했다.
노먼 슈워츠코프사령관이 흘린 『이라크의 핵·화학병기 시설은 궤멸됐다』라든가,『사담 후세인 이라크대통령 경비대는 전멸했다』는 등의 뉴스가 대표적인 예다.
또한 미 언론은 이라크시민들이 겪은 참상은 월남전때보다도 충실히 보도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예외라면 이라크에 기자를 특파,후세인을 만나고 바그다드의 참화를 생생하게 보도한 CNN­TV밖에 없었다.
이처럼 매번 자괴감을 맛본 미 언론은 그러나 권력의 위력에 함몰하지 않았다.
걸프전 보도에서 자성한 미 언론은 지난해 7월부터 정부의 역리를 시정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더많이 확보하기 위해 또 투쟁을 벌였다.
결국 「돌도 10년을 보고있으면 구멍이 뚫린다」고 이번 전쟁보도 합의는 미 언론의 집요한 언론자유 주장에 완고했던 미 정부가 개안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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