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속의 기계음(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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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고대 바빌로니아의 수도 바빌론은 네부카드네자르왕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정방형의 성곽도시였다. 주위의 성벽을 견고하게 쌓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내부도 마치 요새처럼 튼튼했다. 그 바빌론성에 킬스왕이 이끈 페르시아 대군이 쳐들어 왔다. 그러나 막강한 페르시아군이 2년동안 밤낮없이 공격해도 바빌론성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진퇴양난에 빠진 킬스왕은 문든 한 계략을 생각해 냈다. 성안을 가로질러 흐르는 유프라테스강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그는 병사들을 시켜 성밖의 강물을 막아 다른 곳으로 흐르게 한다음 그 물길을 따라 성밑으로 쳐들어간 것이다.
하늘로 날아오르지 않는한 개미새끼 한마리 얼씬도 못하리라고 장담했던 바빌론의 군사들이 싸움 한번 제대로 못하고 쓰러진 것은 물론이다. 기원전 583년의 일이다. 킬스왕이 비록 땅굴을 판 것은 아니지만 지하를 이용한 그 전략적 의미는 땅굴과 크게 다를바가 없다.
그런데 요즘 서울 근교의 땅밑에서 기계음이 들린다고 해 화제가 되고 있다. 땅속의 기계음이란 두말할 것도 없이 땅속에서 작업하는 도중에 나오는 소리다. 입구가 없는데 땅속에서 소리가 들린다면 그것은 누군가가 땅굴을 파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래서 정원식총리는 28일 국방부를 비롯한 관련부처에 그것을 확인하라고 지시했다.
땅굴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높은 것은 바로 북한이 휴전선 남쪽으로 파내려온 땅굴때문이다.
그 첫번째 땅굴이 발견된 것은 지난 74년 11월 고랑포남쪽 8㎞지점에서 발견된 제1땅굴이었다. 그때의 충격을 국민들은 잊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어 제2,제3,제4땅굴이 발견됐다. 따라서 북한이 파들어온 땅굴이 도대체 몇개가 더 있는지 알길이 없다.
이같은 북한의 땅굴을 두고 군사전문가들은 김일성이 6·25때 정규전에 실패하자 비정규전에 관심을 두고 공·해·지상전과 다른 이른바 「지하전」을 위해 파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실로 오랜만에 남북이 화해무드에 젖어 있는 이때 땅속에서 들리는 기계음이 제발 그런 땅굴이 아니기를 바란다.<손기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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