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장의식… 싱겁게 마무리/증감원 현대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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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법위반시 어떤 기업도 제재 입장/가지급금 문제 해결안돼 걸림돌
현대그룹의 비상장계열사 종업원주식매출과 관련된 증권거래법 위반혐의에 대한 당국의 조사는 한달만에 「싱겁게」 마무리됐다.
정부와 국민당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4월3일 주력업체인 현대전자가 48억원의 대출금을 정주영대표에게 주는 등 유용했다고 발표한 당국의 서슬 푸른 칼날은 현대전자 주력업체 취소보류에 이어 증권거래법을 위반한 정씨일가를 고발대상에서 제외함으로써 무뎌진 상태에서 거두어졌다.
증감원은 이번 문제에 대해 좀 더 시간을 갖고 자세한 내용을 밝히자는 입장이었으나,당국의 처리방침이 앞당겨지면서 26일 심야까지 계속된 증권감독원과 관계부처 협의를 통해 최대한 파장을 줄이는 선으로 매듭된 것으로 알려졌다.
증감원은 이번 조사에서 주식매각대금을 종합기획실에서 일차로 수령,20여개의 실명·가명계좌에 분산시켰다가 정 대표 등 정씨일가 대주주에게 전달해준 것을 밝혀냈다. 또 이 과정에서 종합기획실이 개입한 것을 감추기 위해 각 계열사가 종업원들로부터 주식대금을 받아 직접 정씨일가에게 건네준 것처럼 가짜 영수증을 만들어 증감원의 조사반원에게 제시하는 등 증거를 조작했다고 증감원이 27일 발표했다.
박종석증권감독원장은 이날 오전 기자회견을 갖고 『여러 정황을 감안해 볼때 현대측에서 종업원지주제를 위해 주식을 매출했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으나,실제로는 정주영씨 등 대주주가 필요한 자금을 급히 마련하기 위한 계획에 따라 증권거래법의 규정을 위반해가며 주식을 매각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증감원이 이런 결론을 내린 가운데서도 정 대표 등 정씨일가에 「앞으로 잘하라」는 정도의 엄중경고에 그친 것은 애써 이 문제를 축소한 정부당국의 변화된 대응이 엿보인다. 이와 관련,증감원 관계자는 『세간에선 이 문제가 증폭돼 정주영대표를 고발하는 등 현대·국민당을 정치적으로 탄압하려 들 것이라는 식의 이야기도 있었지만 증감원의 이번 결정은 정치성을 탈피하고 어느 기업이라도 이같은 법 위반사실이 있을 경우 이 정도의 제재가 이뤄졌을 것이라는 형평성 문제도 고려됐다』고 밝혔다.
또 비록 전체 주식매각대금의 66%가 유가증권신고서 효력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건네졌다고는 하지만 이는 주식을 공개매각한다고 해놓고선 하지않는 등 투자자 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증권거래법의 법정신이나 감정에 어긋나지 않았으며 그중 한 절차를 어긴 것이라는 판단에서 제재결정이 내려진 것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지난 17일 업무차 출국,현재 국내에 없는 이현태 전 종합기획실장(현 현대석유화학 사장)의 사법처리도 법이 정한 처벌범위안에서 가장 가벼운 것이 되리란 업계의 관측이다. 이씨가 어긴 것으로 된 증권거래법 8조 등은 그 처벌로 2년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릴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와 함께 그동안 여러가지 이유로 억제돼 온 현대계열사의 유상증자나 회사채 발행,현대중공업 등 비상장 3개사의 주식장외시장 등록문제 등이 점차 완화되며 시장상황에 따라 허용될 것으로 업계는 점치고 있다.
그러나 현대와 당국과의 갈등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정주영국민당대표 등이 계열사에서 빌려쓴 돈(가지급금) 2천20억원의 회수문제가 이달말이 시한이다. 금융당국은 현대가 기한내에 이 문제를 처리하지 않을 경우 신규여신억제 등 강경한 금융제재를 취할 방침이다. 현대상선 등 계열사의 주식을 임직원에게 위장분산시켰는지에 대한 국세청의 조사도 마무리 단계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세청은 2월부터 4월 중순까지 현대증권에 나가 임직원 명의로 된 50여개 계좌의 거래내용을 조사했었다.
따라서 정치상황 등의 변화에 따라 당국이 현대에 걸 고리는 아직도 남아 있는 셈이다.<양재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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