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자산의 10%만 투자 하세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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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 23면

대기업 임원인 박모씨는 2005년 말 한 외국계 은행이 판매한 오일펀드에 투자해 6개월 만에 12%의 수익을 올렸다. 원유 가격이 가입 때보다 크게 올라 펀드가 조기 청산되면서 투자자들에게 수익을 돌려줬기 때문이다. 자신이 붙은 박씨는 곧바로 이 돈에 주식형 펀드를 환매한 돈을 합쳐 다른 오일펀드에 투자했지만 쓴맛을 봐야 했다. 지난해 여름부터 유가가 급락하면서 30%의 원금 손실을 보게 된 것이다.

주식보다 변동률 2배… 기대 수익 높지만 투자 위험도 커

실패 원인은 두 가지였다. 그는 이라크전쟁 이후 지속된 유가 상승이 계속될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했다. 하지만 시장은 반대로 움직였다. 유가가 너무 올랐다는 인식이 시장에 널리 퍼진 데다 헤지펀드 등 투기적 세력이 이탈하면서 하락을 부추겼다. 더 큰 문제는 두 상품의 수익 및 손실 구조가 다르다는 점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가 처음 가입한 펀드는 가입 이후 6개월마다 유가가 일정 범위에 있으면 추가 수익을 내도록 고안된 원금보장형 상품이었다. 이에 비해 두 번째 가입한 펀드는 유가가 오르면 좋지만 일정 범위 아래로 떨어질 경우 고객이 고스란히 손실을 떠안는 구조로 짜여 있었다.

전문가들은 박씨와 같은 낭패를 겪지 않으려면 실물펀드는 고위험ㆍ고수익 상품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펀드의 자산인 실물가격의 출렁임이 워낙 심하기 때문이다. 유가는 이라크전쟁 전 배럴당 20달러를 밑돌다 지난해 80달러 선까지 육박했지만 6개월 만에 55달러까지 하락했다. 구리와 니켈 등 광물 가격도 대부분 지난해 정점을 치고 약세를 보이고 있다. 농산물은 해마다 작황에 따라 가격이 춤을 춘다.

로이터제프리국제상품가격지수의 지난 10년간 연평균 변동률은 20.73%로 다우존스지수의 두 배다. 연간 최고 상승률과 하락률은 각각 52.44%와 36.49%에 달한다. 같은 기간 중 서부텍사스 중질유 가격은 연평균 30.27% 오르내렸다. 이들 상품이나 지수에 직접 투자하는 펀드는 이 같은 가격변동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밖에 없다. 맵스자산운용 권정훈 과장은 “이런 펀드는 국제상품가격지수에 비례해 수익이나 손실을 보는 인덱스형이므로 헤지할 수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기대 수익과 위험이 비례한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한국선박운용이 지난해 10월 공모한 ‘거북선펀드’는 국고채 3년물 수익률보다 불과 0.2%포인트 높은 연 5% 확정수익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공모됐다. 국가 자산인 해경의 경비함에 투자해 부도 위험이 없고 원리금을 보장받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일반 선박펀드들은 연 6∼9%의 수익률을 제시한다. 이들 펀드는 국가보다 신용도가 떨어지는 국내외 선박회사에 배를 빌려주고 받는 용선료로 투자자에게 원리금을 지급한다.

환금성도 떨어진다. 실물펀드는 주식이나 채권형 펀드와 달리 만기까지 환매하지 못하는 폐쇄형 펀드가 많다. 만기도 길다. 한국투자증권이 공모한 베트남유전펀드의 만기는 5년3개월, 선박펀드는 최대 5∼9년이다. 증권사와 자산운용사가 해당 펀드를 증권거래소에 상장하는 방식으로 현금화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거래량이 워낙 적어 적절한 때 원하는 가격에 팔기 어렵다. 이 같은 점들 때문에 실물펀드는 주식ㆍ채권을 모두 대체할 투자수단이 될 수는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인플레이션을 헤지하고 주식ㆍ채권 수익을 초과하는 수익을 노리는 보조적인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투자증권 신금호 차장은 “장기투자가 가능한 자금을 전체 자산의 5∼10% 선에서 투자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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