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ㆍ미ㆍ중 ‘3각 협력’의 새로운 지평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호 27면

필자는 27일 베이징에서 개최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다자협력 강화 방안’ 회의에 참가할 기회가 있었다. 북한 측을 제외한 5개국 정부 및 민간 대표들이 참가한 이번 회의에서는 북한 핵의 폐기 방법,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체제 구축 대안, 대북 경제ㆍ에너지 지원 방안 등이 심도있게 다루어졌다.

이번 회의는 여러 측면에서 유익했다. 무엇보다 ‘트랙 투(Track Twoㆍ민간 부문)’에서의 활발한 정책 논의가 6자회담의 실질적 진전에 공헌할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비공식 부문에서의 진솔한 정책 논의와 사전 조율은 공식 협상을 보다 순조롭게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흥미있는 대목은 한국ㆍ미국ㆍ중국 간 긴밀한 협력체제의 등장이다. 우선 이번 회의 자체가 중국의 현대국제관계연구원, 미국의 외교정책분석연구소, 그리고 한국의 동아시아재단 3자 공동으로 개최됐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세 나라 연구기관 간에 양자협력은 흔히 있어왔으나 3자 공동사업은 찾아보기 힘들다.

한ㆍ미ㆍ중 참석자들 간 협력적 자세 역시 돋보였다. 3국 대표들은 모든 정책 사안에 거의 한목소리를 냈다. 피랍 일본인 문제로 북핵 해결에 다소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일본 측 대표들에 대한 비판적 입장 표명에 있어서도 맥을 같이했다. ‘9ㆍ19 공동성명’과 ‘2ㆍ13 합의 조치’가 모두 한ㆍ미ㆍ중 정부의 공동 노력이 가져온 결과라고 평가했을 때 3국 간의 달라진 면모를 느낄 수 있었다.

미국과 중국은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강대국들이다. 특히 북한 핵문제는 물론 북한의 급변사태 등에 대비해 미ㆍ중은 최근 긴밀한 정책대화를 전개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 만큼 이 두 강대국과의 정책조율은 필수적이다. 한반도의 운명을 이 두 강대국에 그냥 맡겨놓을 수는 없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사실 한국은 이 두 강대국 사이에서 크게 고심해왔다. 1990년대 4자회담(남북+미ㆍ중)의 경우처럼, 한ㆍ미 관계가 좋으면 중국이 3자회동에 부정적 입장을 취해왔다. 반면에 전통적 외교 노선인 한ㆍ미ㆍ일 3국 공조체제를 떠나 중국에 편승한다는 노무현 정부의 균형자론이 왜곡ㆍ확산되면서 미국이 한ㆍ미ㆍ중 3국 공조에 소극적 태도를 보여온 바 있다.

한ㆍ미ㆍ중 3국 협력체제 구축은 여러 면에서 우리에게 유익하다. 한ㆍ미ㆍ일 3국 공조 시스템이 우리의 평화와 번영을 담보해왔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는 지속적으로 유지ㆍ발전돼야 한다. 그러나 중국을 배제한 한ㆍ미ㆍ일 3국 공조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는 없는 일이다. 역내 협력구도로서 한ㆍ중ㆍ일 3국 협력 또한 제도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 그러나 미국을 빼놓은 한ㆍ중ㆍ일 3국 협력체제가 동북아의 번영을 가져올 수 있을지는 몰라도 평화를 담보해주기는 힘들 것이다.

한ㆍ미ㆍ중 3각 협력 구도에 역점을 두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동북아에 미국ㆍ중국ㆍ일본으로 구성된 강대국 협의체의 등장을 막는 데 있다. 미국 일각에서는 동북아 안보 구상의 일환으로 미ㆍ중ㆍ일 3국 협의체 구성을 고려하고 있다.

이는 우리에게 19세기 말의 악몽과 같은 시나리오의 재현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도 우리는 기존의 한ㆍ미ㆍ일, 한ㆍ중ㆍ일 3각구도의 외교에 한ㆍ미ㆍ중 관계를 현명하게 접목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그러나 국제정치사적 관점에서 조망할 때, 3각 협력 구도는 본질적으로 불안정하다. 한나라의 파행적 행보에 따라 협력과 균형이 쉽게 깨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3자협력을 넘어 다자협력 체제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 점에서 6자회담의 성공적 타결을 통한 동북아 다자 안보협력 체제의 구축을 기대해 본다. -베이징에서

ADVERTISEMENT
ADVERTISEMENT